민주주의 국가에서 최고 통치자의 권한은 막강합니다. 그러나 그 권한이 남용되거나 헌법과 법률을 위배할 경우, 국민은 다양한 방식으로 견제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탄핵과 파면'입니다. 우리는 지난 박근혜, 윤석열 두 명의 대통령을 촛불혁명, 빛의 혁명으로 탄핵・파면하는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을 탄핵소추하고 헌법재판소에서 인용 또는 기각하는 과정이라는 파면의 과정에 대해 많은 분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다른 나라의 탄핵・파면 절차는 어떤지 확인해 보았습니다.
법치로 운영되는 국가이니만큼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각국의 역사와 정치 체제에 따라 법적 근거, 절차, 그리고 실제 사례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오늘은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그리고 중국까지, 5개국의 최고 통치자에 대한 탄핵 및 파면 제도를 자세히 살펴보고, 각국의 특징과 파면 사례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미국: 대통령 탄핵, 의회의 강력한 견제
미국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어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제도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1) 법적 근거
- 미국 연방 헌법 제1조 제2항, 제3항에 탄핵(Impeachment)에 관한 규정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 '대통령, 부통령 및 모든 민사 공무원은 반역죄, 뇌물수수, 또는 기타 중대한 범죄 및 비행(High Crimes and Misdemeanors)으로 탄핵소추되고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 직위에서 해임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2) 절차
가) 탄핵소추(Impeachment by the House)
- 연방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하원 법사위원회에서 조사를 진행합니다.
- 법사위가 다수결로 탄핵 사유가 있다고 판단하면 탄핵소추장을 작성하여 하원 본회의에 올립니다.
- 하원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이는 대통령이 기소된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나) 탄핵심판(Trial by the Senate)
- 탄핵소추안이 하원을 통과하면 상원에서 탄핵심판을 진행합니다. 이때 연방 대법원장이 심판을 주재하며, 상원의원들은 배심원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 상원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탄핵이 최종 결정됩니다.
3) 사례
미국에서는 탄핵으로 인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사례는 아직 없습니다.
- 앤드루 존슨 (Andrew Johnson, 1868년): 남북전쟁 후 재건 정책을 둘러싼 의회와의 갈등으로 탄핵소추되었으나 상원에서 한 표 차이로 부결되어 파면되지 않았습니다.
- 리처드 닉슨 (Richard Nixon,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소추 직전까지 갔으나, 하원 표결 전 자진 사임했습니다.
- 빌 클린턴 (Bill Clinton, 1998년): 르윈스키 스캔들과 위증 혐의로 탄핵소추되었으나, 상원에서 부결되어 대통령직을 유지했습니다.
- 도널드 트럼프 (Donald Trump, 2019년 및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탄핵소추되었으나, 모두 상원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 관련 권한 남용 및 의회 방해,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 선동 혐의)
2. 영국: 총리 불신임, 의원내각제의 핵심
영국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어 최고 통치자인 총리(수상)에 대한 '탄핵'이라는 개념보다는 '내각 불신임' 또는 '당수 신임 투표'를 통한 파면 절차가 주로 이루어집니다.
1) 법적 근거
- 영국은 성문 헌법이 아닌 불문 헌법(관습법, 의회법 등)을 기반으로 합니다.
- 총리직 유지는 하원 다수당의 지지를 전제로 하며, 당내 규정과 의회 관례에 따라 불신임이 결정될 수 있습니다.
- 특히 2011년 고정임기법(Fixed-term Parliaments Act)이 제정되면서 의회 해산 요건이 명확해졌으나, 2022년에 다시 폐지되어 총리의 의회 해산권이 복원되었습니다.
2) 절차
가 내각 불신임 결의(Vote of No Confidence)
- 하원에서 내각 전체 또는 총리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발의할 수 있습니다.
- 불신임안이 가결되면 총리는 총사퇴하거나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다시 실시할 수 있습니다.
나) 당내 신임 투표
- 집권당 내부에서 당수에 대한 신임 투표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 예를 들어, 보수당의 경우 '1922 위원회'를 통해 당 대표(총리)에 대한 불신임 투표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 일정 수 이상의 의원이 불신임 투표를 요청하면 투표가 진행되며, 과반수 이상이 불신임에 찬성하면 당 대표직을 상실하고 총리직에서도 물러나게 됩니다.
3) 사례
- 마거릿 대처 (Margaret Thatcher, 1990년): 당내 불신임 투표 위협에 직면하여 자진 사임했습니다.
- 테레사 메이 (Theresa May, 2018년 및 2019년): 브렉시트 합의안 문제로 당내 불신임 투표를 겪었으나, 신임을 얻어 총리직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사임 압박으로 물러났습니다.
- 보리스 존슨 (Boris Johnson, 2022년): '파티게이트' 스캔들로 당내 신임 투표를 받았으나, 신임을 얻어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이후 여러 스캔들로 인한 내각의 지지 철회로 결국 총리직에서 사임했습니다.
3. 프랑스: 대통령 탄핵, 매우 엄격한 요건

프랑스는 이원집정부제(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나누는 형태)를 채택하고 있으며, 대통령 탄핵은 매우 엄격한 요건 하에서만 가능합니다.
1) 법적 근거
- 프랑스 헌법 제68조에 대통령의 파면(destitution)에 관한 규정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 '대통령은 그 직무 수행과 양립할 수 없을 정도로 책무를 위반한 경우에만 파면될 수 있다. 파면은 고등탄핵재판소(Haute Cour)에 구성된 의회에 의해서 선언된다.' 즉, '직무 수행과 양립할 수 없는 책무 위반'이라는 매우 중대한 사유가 요구됩니다.
2) 절차
가) 탄핵 제안
- 상원 또는 하원 어느 한쪽에서 고등탄핵재판소 소집 제안을 채택하면, 15일 이내에 다른 원에 전달하여 의견을 표명합니다.
나) 고등탄핵재판소 구성 및 심판
- 상·하원 의원들이 합동으로 고등탄핵재판소를 구성하여 탄핵 심판을 진행합니다.
- 재판소는 1개월 이내에 파면에 대한 비밀투표를 실시하며, 의회 또는 고등탄핵재판소를 이루는 구성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파면이 결정됩니다.
3) 사례
- 프랑스에서는 헌법 제정 이후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된 사례는 없습니다.
- 2022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 개시가 논의된 적이 있었으나, 실제 가결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 이는 프랑스 헌법이 탄핵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일본: 총리 탄핵 대신 '내각 불신임 결의'

일본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총리에 대한 '탄핵'이라는 직접적인 제도는 없습니다. 대신 영국과 유사하게 '내각 불신임 결의'를 통해 총리 및 내각의 퇴진을 유도합니다.
1) 법적 근거
- 일본국 헌법 제69조에 중의원의 내각 불신임 결의와 내각 신임 결의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2) 절차
가) 내각 불신임 결의(内閣不信任決議)
- 중의원(하원)에서 내각 불신임 결의안을 제출하고 표결에 부칩니다.
- 중의원 출석 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불신임 결의안이 통과되거나, 내각 신임 결의안이 부결되면 내각은 총사퇴해야 합니다.
나) 중의원 해산
- 내각 불신임 결의가 가결되었을 때, 총리는 내각 총사퇴를 선택하거나 10일 이내에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할 수 있습니다.
- 이는 내각이 국민의 직접적인 심판을 다시 받는 기회가 됩니다.
3) 사례
일본에서는 내각 불신임 결의가 가결되어 총리가 총사퇴하거나 중의원을 해산한 사례는 여러 번 있습니다.
- 요시다 시게루 (吉田茂, 1948년, 1953년): 두 차례에 걸쳐 내각 불신임 결의를 당했으나,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에서 승리하여 다시 총리직을 수행했습니다.
- 오히라 마사요시 (大平正芳, 1980년): 내각 불신임 결의가 가결되어 중의원을 해산했으나, 총선 중 사망했습니다.
- 미야자와 기이치 (宮澤喜一, 1993년): 정치 개혁 문제로 내각 불신임 결의가 가결되어 중의원을 해산했습니다. 총선 결과 자민당이 과반수를 얻지 못하며 비자민 연립정권이 수립되어 총리직에서 물러났습니다.
5. 중국: 최고 권력자의 교체, 공산당 내부 규율과 정치 역학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자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이므로,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과 같은 의미의 '탄핵' 제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국의 최고 통치자는 국가 주석이며, 동시에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겸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들의 교체는 법적 절차보다는 공산당 내부의 규율, 권력 투쟁, 그리고 정치적 역학 관계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1) 법적 근거
- 중국 헌법에는 국가 주석의 임면 규정이 있지만, 실제 권력 교체는 공산당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이 더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 명목상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국가 주석을 선출하고 해임할 권한을 가집니다.
- 그러나 전인대는 공산당의 지도하에 있기 때문에, 당의 결정이 사실상 최종적인 효력을 가집니다.
- 당 규율 위반에 대해서는 '당 규율 처분 조례' 등의 내부 규정을 적용합니다.
2) 절차
가) 당내 심의 및 결정
- 최고 권력자의 중대한 직무 위반이나 부정부패 등이 발생하면, 공산당 중앙위원회, 특히 중앙기율검사위원회에서 조사를 진행합니다.
- 이 조사는 철저히 비공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 정치국 및 중앙위원회 회의
- 조사 결과에 따라 정치국 상무위원회, 정치국, 중앙위원회 등의 주요 회의에서 해당 인사의 거취를 결정합니다.
- 이는 주로 당내 권력 서열에 따른 합의 또는 권력 투쟁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다) 전인대 승인 (형식적 절차)
- 당내에서 최고 권력자의 교체가 결정되면, 형식적으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 주석의 해임 또는 새로운 주석의 선출 절차를 밟습니다.
- 이는 이미 결정된 사항을 추인하는 성격이 강합니다.
3) 사례
중국에서는 최고 권력자가 법적인 '탄핵' 절차를 통해 파면된 사례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내 권력 투쟁이나 중대한 비리 혐의로 실각한 사례는 있습니다.
- 후야오방(胡耀邦, 1987년): 당 총서기였으나, 1986년 학생 시위 사태에 대한 온건한 대응으로 당내 보수파의 비판을 받아 결국 사임했습니다. 이는 공식적인 탄핵 절차보다는 당내 압력에 의한 실각에 해당합니다.
- 자오쯔양(趙紫陽, 1989년): 톈안먼 사태 당시 학생 시위에 대한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 당내 강경파에 의해 총서기직에서 해임되고 가택 연금되었습니다. 이 역시 당내 권력 투쟁과 숙청의 성격이 강합니다.
- 보시라이(薄熙來, 2012년): 정치국 위원이었으나, 부패 및 권력 남용 혐의로 기율위 조사를 받고 모든 당직과 공직에서 해임되었으며, 이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국가 주석급은 아니지만, 중국 최고 권력층의 교체 방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탄핵과 파면,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4개국의 최고 통치자 탄핵/파면 제도를 살펴보면서, 각국의 정치 체제와 역사적 배경이 이러한 제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과 프랑스는 '탄핵'이라는 제도를 통해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견제하려 하지만, 그 요건과 절차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특히 프랑스는 탄핵이 매우 엄격한 요건 하에서만 가능하여 실제로 파면된 사례가 없습니다.
반면 의원내각제 국가인 영국과 일본은 '내각 불신임 결의'를 통해 의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며, 이는 총리의 사임 또는 의회 해산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중국의 경우,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최고 권력자의 교체는 법적 탄핵보다는 당 내부의 규율, 권력 투쟁, 그리고 정치적 역학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이러한 당의 결정을 추인하는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제도들은 궁극적으로 최고 통치자의 권한을 견제하고, 국민 주권을 실현하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장치입니다. 각국이 처한 정치적 상황과 사회적 요구에 따라 이러한 제도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진화할 것입니다. 최고 통치자라는 자리가 결코 절대적인 권한을 의미하지 않으며, 언제든 국민과 의회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칙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줍니다. 반면, 중국과 같은 일당 지배 체제에서는 최고 권력에 대한 견제 방식이 매우 제한적이며, 권력의 안정성과 연속성이 당의 내부 합의와 규율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이 특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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