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튿날인 2025년 6월 5일,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가슴에 달고 나온 특별한 배지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평범한 태극기와는 다른 모습, 모서리가 찌그러지고 손상된 듯한 형태의 이 배지는 바로 '서울 진관사 태극기'를 본떠 만든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진관사 태극기의 탄생과 제작 과정, 그리고 의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I. 이재명 대통령과 진관사 태극기

뉴스를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진관사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나온 것은 우원식 국회의장의 선물이 시작이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6월 4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취임 기념 원내 정당 대표 오찬 후, 지금이야말로 나라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한 때라는 의미에서 3·1운동 때 사용했던 진관사 보관 태극기 배지를 달아드렸다'고 밝혔습니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배지를 받으며 '정말 의미 있는 태극기네요!'라며 반겼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이 이 배지의 특별한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왜 모서리가 손상되어 보이는지, 왜 일반적인 태극기와 다른 모습인지, 그리고 이것이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모르는 분들이 더 많지요.
진관사 태극기는 단순한 역사적 유물이 아닙니다. 2021년 국가 보물로 지정된 진관사 태극기는 2009년 5월26일 서울시 은평구 진관사의 칠성각을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불단 안쪽 벽체에서 발견됐다는 극적인 발견 과정부터, 그 안에 담긴 항일 의지와 독립에 대한 염원까지, 우리가 알아야 할 깊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습니다.
그럼 먼저 진관사 태극기에 대해 하나씩 알아보겠습니다.
II. 천년고찰 진관사 (津寬寺)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길 73, 지번은 은평구 진관동 354번지입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末寺)입니다. 신라 진덕여왕 때에 지어졌다는 유래가 있는 오래된 고찰입니다. 보통 북한산 진관사라고 불리는 서울 북한산 자락에 자리 잡은 고즈넉한 천년고찰인 진관사는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많은 이들의 발길을 이끄는 곳입니다. 하지만 진관사가 품고 있는 비밀스러운 역사 이야기는 단순히 아름다운 사찰 그 이상을 보여줍니다.
2009년, 진관사 칠성각 해체 복원 과정에서 불단 뒷면에서 3.1 운동 당시에 쓰였던 낡은 태극기 한 점과 독립운동과 관련된 유물들이 우연히 발견되면서 우리 민족의 가슴 아픈 일제강점기 역사와 불굴의 독립 의지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태극기가 일장기 위에 덧칠되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처절하면서도 강렬했던 항일 정신을 여실히 보여주며, 보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III. 진관사 태극기의 발견과 의미

2009년 5월 26일, 진관사 칠성각 불단 안쪽 벽체에서 태극기를 보자기로 감싸 보관된 독립신문류 19점이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이 발견은 한국 불교계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자, 불교 사찰이 단순히 종교적 공간을 넘어 독립운동의 중요한 배후 근거지였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때 발견된 유물 총 6종 20점의 사료들은 2010년 정부에서 등록문화재로 지정하였습니다.
'진관사 태극기'가 지닌 가장 특징은 바로 그 제작 방식에 있습니다.
당시 일장기를 구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독립운동가들은 일장기의 붉은색 원 위에 검은 먹물로 태극의 청색 부분과 4괘를 덧칠하여 태극기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일제에 대한 강력한 항일 의지와 함께,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처절한 저항의 몸짓이었습니다. 진관사 태극기는 현재까지 알려진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사례 중 가장 오래되고 유일한 실물본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상징성은 매우 큽니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함께 발견된 독립신문류가 1919년 6월부터 12월까지 발행된 것임을 미루어 볼 때, 진관사 태극기 또한 3.1 운동 직후인 1919년 즈음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진관사 태극기가 3.1 운동의 뜨거운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시기에 제작되어 독립운동 현장에서 직접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며, 우리의 독립운동사를 더욱 풍부하게 해주는 귀중한 사료가 됩니다.
IV. 초월스님과 불교계 독립운동의 흔적

진관사 태극기는 불교계 독립운동의 중요한 인물인 초월스님(初月, 1878~1944)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초월 스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군을 위해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펼쳤던 분으로, 진관사는 그의 독립운동 거점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제의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1944년 청주교도소에서 순국하신 초월 스님의 숭고한 정신은 진관사 태극기에 고스란히 담겨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초월스님은 1878년 2월 17일 경남 고성군에서 부친 백하진 선생, 모친 김해 김씨의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속명은 백도수(白道洙)였으며, 14세가 되던 1892년 지리산 영원사에서 남파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으며, 초월(初月)이라는 법호를 쓰셨습니다.
3·1운동 후 독립운동단체 한국민단본부(韓國民團本部) 결성, <혁신공보(革新公報)> 발간, 1919년 11월 ‘의친왕 이하 33인의 (독립) 선언’에 참여하였으며, 1939년 경성발 봉천행 열차에 ‘대한독립만세’ 구호 사건의 배후 인물로 체포, 3년형을 받고 투옥되었습니다.
1943년 4월 출소하였으나 재차 구금되어 대전형무소 거쳐 청주형무소로 이감되었고, 1944년 6월 옥중에서 순국하였습니다. 당시 세수 67세였습니다.
초월스님은 1986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되었고, 2014년 6월 국가보훈처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습니다.
진관사 태극기를 제작한 것이 바로 초월스님으로, 이 태극기는 초월스님이 제2의 3.1 운동을 하려고 숨겨둔 태극기로 추정됩니다.
진관사 태극기는 일제강점기 불교계의 독립운동이 얼마나 치열하고 조직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당시 많은 사찰들이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이자 비밀 회합 장소로 활용되었으며, 승려들은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 자금을 모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진관사 태극기는 이러한 불교계의 헌신과 희생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소중한 유물입니다.
진관사 태극기와 2025년의 대한민국
진관사 태극기는 2021년 국가 보물 제1121호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았습니다.
이 태극기는 단순히 낡은 천 조각이 아닙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에도 불구하고, 결코 희망을 잃지 않고 자유와 독립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갔던 우리 선조들의 불굴의 정신이 깃든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구멍이 나고 불에 그을린 흔적, 현재의 태극기와는 다소 다른 4괘의 위치는 험난했던 독립운동의 역사를 묵묵히 증언합니다.
진관사 태극기는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과 독립정신을 상징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이를 가슴에 달고 나온 것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민주·진보 정부가 민족 자존과 역사 정의, 국민 주권의 가치를 실천하겠다는 강한 메시지로 읽힙니다.
새 시대를 여는 첫 국무회의에서 진관사 태극기가 함께했다는 사실은, 이 정부가 과거의 정신을 딛고 미래의 정의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다짐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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