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하얀 나비를 찾아 떠난 이름 모를 소녀를 그리며 이별을 노래한 천재

우리가 아는 꽤 많은 천재들이 넘치는 재능을 주체하지 못하고 창작에 매몰되어 스스로의 몸을 해치며 요절하였습니다.

모차르트가 그랬고, 김현식이 그러했고, 오늘 소개할 김정호도 그런 가수입니다.

한恨이 가득한 목소리로 이별을 노래한 천재 싱어송라이터 김정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김정호
사진 출처 : 전남일보

I. 김정호의 인생

'조용호'라는 본명을 가진 김정호는 1952년 3월 27일 전라남도 광주의 유복한 집안에서 2남 2녀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부친은 여수경찰서장을 지내고 출판사를 경영하던 사업가였으며, 모친은 동일창극단원으로 명창 김소희와 함께 활동했던 창의 명인으로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모친을 비롯한 다수의 외가 친척들이 국악계에서 활동하는 국악 집안으로 김정호도 그 재능을 타고났는지 일찌감치 학업을 관두고 집을 뛰쳐나와 삼청동의 기타박사라 불리던 이생회 선생, 미 8군에 출연하던 이상일 등을 선생으로 모시며 기타를 익혔고 곡을 쓰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포크 듀오 '사월과 오월'의 멤버로, 그리고 어니언스의 노래 대부분을 작사·작곡하는 송라이터로 활동하다가 스물두 살이 되던 해인 1974년 '이름 모를 소녀'로 솔로 데뷔를 하였습니다.
이름 모를 소녀, 작은 새, 사랑의 진실, 보고 싶은 마음 등이 수록된 1집(1974년 9월)에 이어 1년 만인 1975년 10월에 발매된 2집 앨범에 수록된 기다림, 하얀 나비 등이 큰 인기를 끌며 김정호는 정상급 가수로 승승장구하였습니다.

2집이 발표되고 2개월 후 대한민국 연예계를 초토화시킨 대마초 파동이 있었습니다.
이장희, 윤형주, 이종용, 신중현, 김추자, 이수미, 김세환, 김정호, 장현, 정훈희, 임창제, 임희숙, 조용필 등 소위 당시에 잘 나간다던 가수 대부분이 연루되어 구속되거나 활동을 중단하게 된 큰 사건이었습니다.

누구나 추측하듯이 이 사건은 그 해 일어났던 굵직굵직한 시국사건을 한꺼번에 덮어버렸을 정도의 큰 사건이었습니다.

1975년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해입니다.
1973년 오일쇼크의 여파로 경제가 파탄난 상황에서 2월에는 유신헌법 찬반 국민투표가 있었고, 4월엔 이른바 '인민혁명당(인혁당)' 관련자들의 기습적인 사형집행, 5월 긴급조치 9호 발동 등으로 박정희 정권에 대한 반감과 저항이 임계치에 다다른 시기였습니다.

그때까지 잘 나가던 김정호는 이 사건으로 갖은 고초를 겪었고 1979년 해금될 때까지 활동을 중단하여야 했습니다.
이 시기 김정호는 방위병 소집 기일에 지방 공연 등으로 시한을 맞추지 못해 탈영병으로 수감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군 복무를 마쳤는데, 77년 방위소집해제로 군 복무를 마칠 무렵 호되게 걸린 감기는 지병인 폐결핵을 재발시켰고 나중에 세상을 떠나게 된 이유가 되었습니다.

1980년 3집 앨범 '인생'을 발매하였지만 폐결핵 증세가 악화되어 별다른 활동을 하지도 못하고 인천 바닷가에 위치한 결핵요양소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1983년 11월. 차에 꽹과리를 싣고 다니며 1시간씩 두드렸을 정도로 국악에 깊이 빠져있던 김정호의 국악적 감성이 진득하게 배어 있는 음반 '님'을 발매하였습니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육신으로 숨쉬기조차 힘들어 5개월이라는 최장시간 녹음을 해야 했던 이 앨범은 결국 김정호의 유작이 되었습니다.

1985년 11월 29일 김정호는 초등학교 선배의 사촌동생으로 중학시절부터 오랜 세월 지켜온 평생의 반려자인 아내에게 '고생시켜 미안해'라는 유언만을 남긴 채 33년 8개월의 삶을 마치고 세상을 등졌습니다.

"고생시켜 미안해"

 

 

II. 김정호의 음악

김정호는 '하얀 나비' '이름 모를 소녀' '작은 새' 등 가장 한국적인 포크를 구사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리고 외가 쪽의 영향인지 국악과 남도민요에서 보이는 창법도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우수와 애수, 진한 감성, 구절구절 마치 울음이 배어 나오는 듯한 느낌들이 진하게 느껴지는 음악입니다.

김정호 1집 '이름 모를 소녀'는 과거 학생층에 국한되었던 포크송을 전 국민으로 넓혔다는 평을 받습니다.
가슴을 후려치는 김정호의 샤우팅 창법이 인상적이지만 일부는 곡이 너무 어둡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당시의 대부분의 포크송들이 통기타 반주의 단순한 편곡이었던 것에 비해, 김정호 1집은 현악기와 오르간 등이 주도하는 세련된 편곡을 보여주었습니다.

김정호의 유작앨범 'Life'는 국악과 대중음악의 접목을 구현하기 위해 무척이나 힘들게 작업한 앨범이라고 합니다. 외삼촌의 국악에 자신의 음악을 접목하기 위해 아쟁, 가야금, 꽹과리를 직접 두들기며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의 혼을 담아낸 역작입니다.
특히 수록곡 '님'은 그의 죽음을 예견한 듯 상여 가락을 연상시키는 선율이라는 평을 듣습니다.

 

그의 음악 몇 곡을 링크하였습니다.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 (1983)

 

님 (1983)

 

하얀 나비 (1975)

 

이름 모를 소녀 (1974)

 

 

※ 함께 들으면 좋은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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