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현과 벗님들, 그리고 집시 Gypsy 이야기

1988년 이치현과 벗님들이 발표한 '집시 여인'이란 노래는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 수상으로 골든컵까지 수상한 당시의 메가 히트 넘버였습니다. 집시 Gypsy라는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영화나 소설 그리고 음악에서나 들어봤을 법한 유랑 민족의 인지도를 한순간에 올려준 노래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엄청난 동안으로 왕성히 활동하는 가수 이치현과 각종 경연 프로그램에서 꾸준히 커버되고 있는 명곡 집시 여인, 그리고 이치현이 몸담았던 밴드 '벗님들'과 '이치현과 벗님들'의 명곡들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이치현과 벗님들 음반커버모음-min

 

I. 이치현과 벗님들

80년대와 90년대 밴드로 시대를 풍미했던 '이치현과 벗님들'의 리더 이치현은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으니 2023년 현재 68세가 된 참으로 무지막지한 동안을 가진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입니다.

'이용균'이라는 본명을 가진 이치현은, 서라벌고 재학 시절 밴드부 활동을 하다 1972년 KBS 노래자랑에서 우승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노래와 연주에 재능이 있었습니다.

밴드부에서 익힌 플루트로 중앙대학교 기악과에 입학하였으나, 학비를 벌기 위해 밤무대나 레스토랑에서 기타를 연주를 하기도 했었는데, 1978년 TBC(동양방송)에서 개최한 제1회 해변가요제에서 포크 듀오 '벗님들'로 참가하여 인기상을 수상하면서 데뷔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연주한 노래가 이치현 작곡의 '그 바닷가'인데 당시 해변가요제의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인기상 수상도 참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당시 '흥에 겨워 여름이 오면~'으로 시작하는 '여름'을 부른 '징검다리'가 대상을 수상했고, 피버스의 '그대로 그렇게', 블랙 테트라의 '구름과 나'가 우수상이었으며, 활주로의 '세상모르고 살았노라'와 이치현의 팀 '벗님들'이 인기상이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조금이나마 인지도를 얻은 '벗님들'은 드러머 이순남이 충원되면서 3인조 밴드로 모양새를 갖추었고, 1979년 데뷔 앨범을 발표하게 됩니다.

1집에서 '또 만났네'라는 펑키한 록 넘버가 나름 인기를 얻고, 같은 해 발매한 2집에서 발라드 '당신만이'가 크게 히트하면서 순조롭게 오버그라운드 무대에서 자리를 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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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현은 2집 발표 후 잠시 솔로로 활동을 하였으나, 1983년 다시 팀을 재구성하면서 '이치현과 벗님들'이라는 팀명으로 밴드 활동을 재개합니다.

이때부터 '다 가기 전에', '사랑의 슬픔', '집시 여인' 등 히트 넘버를 연속으로 발표하면서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로 골든컵을 받기도 하는 등 정상급 가수로 자리를 잡게되었습니다.

68세라기엔 믿기지 않는 동안으로, 여전히 뛰어난 기타 실력을 뽐내며 전성기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이치현은 최근까지도 '불꽃밴드'와 같은 TV 경연프로그램과 다양한 라디오 활동 등 방송과 공연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고, 페이스북에 꾸준히 근황이 업데이트되고 있습니다.

 

이치현 Facebook 채널

 

 

 

 

II. 집시 여인

이치현과 벗님들 최고의 히트 넘버인 '집시 여인'은 '집시 Gypsy'라는 유랑 민족을 낭만적으로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자 아마도 대한민국 대중 예술에서 유일하게 집시를 다룬 콘텐츠가 아닌가 싶습니다.

원래 집시 Gypsy라는 말은 '[불법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함축된 인종차별적 단어로서 유럽 각지를 유랑하며 토착민들에게 핍박받던 유랑 민족을 칭하는 대표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집시는 주로 서아시아, 유럽과 동유럽에 주로 거주하는 인도·아리아계의 유랑민족이라고 하는데, 지역에 따라서 약간씩은 다르게 불리기도 하지만 그러한 표현도 집시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이고 차별적인 표현인 것은 동일하였습니다.

집시라고 불리던 로마니족 Romani의 대표자들은 1971년 세계 로마니 회의에서 집시를 포함한 모든 부정적 표현을 거부하였는데,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들 유랑민족은 '세계 로마니 대회'가 개최될 정도로 현재는 서아시아,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브라질, 러시아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언어학적으로 그리고 유전적으로 집시의 기원은 오늘날 인도의 라자스탄, 하리아나, 펀자브 지역이라고 생각되며, 2019년 현재 유럽연합에만 약 6백만 명의 로마니 인들이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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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집시 여인'에서의 집시는 로마니인 만을 한정하여 표현한 가사는 아닙니다.
가사와 같이 현대에는 집시란 단어가 원래의 유랑민족 로마니족을 특정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확장하여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집시라는 단어와 비슷하게 사용되었던 '보헤미안' 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15세기 프랑스 보헤미아 지방의 집시를 가리키던 '보헤미안'은 원래 집시와 마찬가지로 방탕한 습관, 방랑자, 부랑배 등을 부정적으로 지칭하던 단어였다가 18세기에 들어서며 시민사회의 규범과 통제를 벗어난 자유롭고 무정부주의에 가까운 성향을 가진 집단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크게 변화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18세기 산업혁명을 통해 급격하게 자본주의 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많은 폐해가 발생하였고 그에 대한 반발의 결과 중 하나이며, 나아가 2차 대전 직후의 비트 세대와 60년대 미국의 히피 등 전 세계에서 다양한 형태의 반 규범적 유랑민이 등장하면서 집시라는 집단의 인종과 기원이 무의미해진 탓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과 시대의 변화와 무관하게 여전히 유럽 각 국에서는 유랑 집단인 집시들을 추방하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의 방조 아래 극우 단체들을 중심으로 극단적인 폭력행위까지 서슴지 않고 있기도 합니다.

대다수의 집시들은 길거리에서 거지 같은 모양새로 현지인이나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구걸을 하거나 소매치기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며 생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황청이나 UN인권기구 그리고 언론들은 인종차별 정책이라 비난하고 있지만, 집시 문제는 새롭게 등장한 난민 문제와 함께 유럽의 고질적인 난제 중의 하나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치현 – 집시 여인 [열린 음악회, KBS 21.07.11]

그댄 외롭고 쓸쓸한 여인 끝이 없는 방랑을 하는
밤에는 별 따라 낮에는 꽃 따라 먼 길을 떠나가네

때론 고독에 묻혀있다네 하염없는 눈물 흘리네
밤에는 별 보며 낮에는 꽃 보며 사랑을 생각하네

내 마음에도 사랑은 있어, 난 밤마다 꿈을 꾸네
오늘 밤에도 초원에 누워 별을 보며 생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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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 집시 집시 집시 여인 끝이 없는 방랑을 하는
밤에는 별 따라 낮에는 꽃 따라 외로운 집시 여인

 

 

III. Discography

이치현과 벗님들 – 당신만이 (1985)

 

이치현과 벗님들 – 다 가기 전에 (1986)

 

이치현과 벗님들 – 사랑의 슬픔 (1987)

 

이치현과 벗님들 – 집시 여인 (1988)

 

※ 함께 들으면 좋은 노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