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예수 by 정호승 : 여전히 아프고 슬픈 서울, 그리고 대한민국

서울의 예수 표지
정호승 시선집 '서울의 예수'

 

문학동인 반시(反詩)

반시동인지_1979년_제4집
1979년 반시(反詩)동인지 제4집

서울의 예수는 1981년 2월 문학동인 반시反詩의 작품집 '우리들 서울의 빵과 사람'에 실린 산문시입니다.

여기서 '반시'는 1976년 결성된 문학 동인으로 정호승이 소속된 곳이었습니다.

유신체제의 참담한 사회에서 현실과 유리된 시를 삶의 현장으로 되돌리자라는 신념으로 김창완, 권지숙, 정호승, 이종욱, 하종오, 김명인, 김명수, 김성영 등 1973년 신춘문예 당선자들, 그리고 그들과 뜻을 같이하는 젊은 시인들이 함께 결성하였습니다.

반시 동인은 '삶은 곧 시다',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것들의 시화 詩化가 중요하다. 꽃이나 사랑 등의 관념적 어휘는 배제한다.'라고 말하며, 예술성은 지키되 시가 오늘의 현실인 삶의 문제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삶에서 떠난 귀족화 된 언어에 반기를 들고, 시와 삶의 동질성을 내세우며 언제나 깨어있는 시인"

"詩야 말로 우리네 삶의 유일한 표현 수단임을, 詩야 말로 시대의 구원을 위한 마지막 기도임을 우리는 확신한다. 우리가 조명하고 있는 감추어진 현장의 혼돈을 다시 그 본래적 질서로 회복시키려는 끊임없는 노력조차 오로지 詩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문학동인 반시反詩 동인지 창간사 –

 

 

시인 정호승

정호승 시인
정호승 시인

정호승 시인은 1950년 경남 하동 출생으로 반시 동인을 결성할 때는 27세의 젊은 문학청년이었으며, 반시 활동을 통해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한국 사회의 어두운 현실과 분단의 아픔 등에 관한 시문들을 발표하였습니다.

서울의 예수와 같은 반시 동인 시절의 작품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 '봄길', '수선화에게' 등과 같은 애틋하고 아름다운 시와는 결이 달라 보이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 따뜻한 시선은 그대로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교과서에도 여러 편의 시가 실릴 정도로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들도 많으며, 네이버 검색 기준 120개의 도서가 검색될 정도로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습니다.

시 이외에 어린이 동화, 어른들을 위한 동화, 수필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작업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시어와 절절함으로 '이별 노래', '강변역에서',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등의 작품은 대중가요의 가사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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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난 후…

인문학, 사회과학 책들은 '읽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하는 의지로 완독 합니다.

시는 그런 부담이 없어 편히 읽기 시작하지만, 늘 이해하지 못했다는 열패감을 느끼게 됩니다.

시를 학습하고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은 가지지 못했기에, 시는 그냥 느끼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글은 항상 따뜻하고 편안해서 좋았습니다.

서울의 예수는 그래서 더 아프게 느껴지는 시였습니다. 서울의 시는 1981년 2월 발표되었습니다.

유신의 종말 뒤에 밀어닥친 신군부의 군홧발과 광주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해 더 아픈 글이었습니다.

1981년의 서울에 슬퍼한 예수가 보는 2022년의 서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래서 참…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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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예수

정호승

1

예수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 있다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2

술 취한 저녁 지평선 너머로 예수의 긴 그림자가 넘어간다

인생의 찬밥 한 그릇 얻어먹은 예수의 등 뒤로 재빨리 초승달 하나 떠오른다

고통 속에 넘치는 평화, 눈물 속에 그리운 자유는 있었을까

서울의 빵과 사랑과, 서울의 빵과 눈물을 생각하며 예수가 홀로 담배를 피운다

사람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을 보며, 사람들이 모래를 씹으며 잠드는 밤

낙엽들은 떠나기 위하여 서울에 잠시 머물고, 예수는 절망의 끝으로 걸어간다

 

3

목이 마르다 서울이 잠들기 전에 인간의 꿈이 먼저 잠들어 목이 마르다

등불을 들고 걷는 자는 어디 있느냐 서울의 들길은 보이지 않고,

밤마다 잿더미에 주저앉아서 겉옷만 찢으며 우는 자여

총소리가 들리고 눈이 내리더니, 믿음의 깊이 사이로 첫눈이 내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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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잡힌 돌 하나, 그 어디 던질 때가 없도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운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

눈 내리는 서울의 밤하늘 어디에도 내 잠시 머리 둘 곳이 없나니,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

술잔을 들고 어둠 속으로 이 세상 칼끝을 피해 가다가,

가슴으로 칼끝에 쓰러진 그대들은 눈 그친 서울 밤의 눈길을 걸어가라

아직 악인의 등불은 꺼지지 않고,

서울의 새벽에 귀를 기울이는 고요한 인간의 귀는 풀잎에 젖어 목이 마르다

인간이 잠들기 전에 서울의 꿈이 먼저 잠이 들어 아, 목이 마르다

 

4

사람의 잔을 마시고 싶다.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소주잔을 나누며 눈물의 빈대떡을 나눠 먹고 싶다

꽃잎 하나 칼처럼 떨어지는 봄날에

풀잎을 스치는 사람의 옷자락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나라보다 사람의 나라에 살고 싶다

새벽마다 사람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서울의 등잔에 홀로 불을 켜고

가난한 사람의 창에 기대어 서울의 그리움을 그리워하고 싶다

 

5

나를 섬기는 자는 슬프고, 나를 슬퍼하는 자는 슬프다

나를 위하여 기뻐하는 자는 슬프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는 더욱 슬프다

나는 내 이웃을 위하여 괴로워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았나니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자들은 불행하고

내 이름을 간절히 사랑하는 자들은 더욱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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