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백만원이 생긴다면은 – 만요 (漫謠)이야기

만요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노래들인 '백만원이 생긴다면은', '오빠는 풍각쟁이' 등이 있는데, 한 때 예능에서도 자주 나왔었던 곡들이라 아는 분들도 많은 장르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만요'라는 장르와 가장 유명한 만요인 '백만원이 생긴다면은', 그리고 그 노래의 가사로 살펴본 30년대, 70년대와 오늘의 시대를 비교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만약에 백만원이 생긴다면은, 만요 이야기
만약에 백만원이 생긴다면은, 만요 이야기

 

 

I. 만요 (漫謠)

만요는 '흩어질 만漫 + 노래 요謠'가 합해진 단어입니다. 여기서 漫은 흩어지다, 질펀하다, 방종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漫자는 '물 수水'자와 '끌 만曼'가 결합한 모습으로, 曼자는 모자를 쓴 사람의 눈을 잡아끄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눈길을 끈다'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漫자는 이렇게 '끌다'라는 뜻을 가진 曼자에 水자를 더한 것으로 진흙이 뒤섞인 물이 자구 잡아끈다는 의미에서 '질퍽하다'라는 뜻도 가지게 됩니다.
漫자가 사용되는 다른 예로 '만화 漫畵'가 있습니다.
만화의 사전적 의미는 '이야기 따위를 간결하고 익살스럽게 그린 그림. 사물이나 현상의 특징을 과장하여 인생이나 사회를 풍자·비판하는 그림'입니다.

만화와 마찬가지로 만요는 익살과 해학을 담은 우스개 노래로, 일제강점기에 한국에서 발생한 코믹송 장르를 말합니다. 인생이나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다는 것에서 만화와 형태가 다르지만 같은 성격의 예술장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1994년 서울음반에서 발매된 '30년대 만요'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에는 모두 12곡의 만요가 수록되어 있는데 1937년부터 39년 사이에 녹음된 노래들로 그 제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Side A

  1. 명랑한 양주 – 김송규·김복희
  2. 서울의지붕밑 – 이인근
  3. 신혼 명랑보 – 임영일·박단마
  4. 골목의 오전 일곱시 – 이규남
  5. 장모님 전상소 – 이규남
  6. 눅거리 음식점 – 이규남

 

Side B

  1. 안달이로다 – 이규남
  2. 천당과 지옥 – 김용환
  3. 장모님전 항의 – 김용환
  4. 낙화 유수 호텔 – 김용환
  5. 날나리 바람 – 박단마
  6. 그대와 가게 되면 – 이규남·박단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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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백만 원이 생긴다면은

이 노래는 원래 1937년 작곡가 손목인이 '양상포'란 이름으로 곡을 쓰고, 작사가 남초영이 글을 붙인 노래입니다.

김정구와 장세정이 서로 대사를 주고받듯이 부른 혼성 듀엣곡으로 가장 대표적인 '만요'로 유명한 곡입니다.

1930년대 말 일제강점기 하에서 고통받던 민중들에게 우스꽝스러운 가사와 음률에, 해학과 풍자로 억압적인 식민지 사회분위기에서의 해방구 역학을 했으리라 생각되는 만요는 중일전쟁 이후 본격적인 전시체제로 돌입하면서 점점 사라졌다고 합니다. 해방 후와 개발독재 시기에 비슷한 느낌으로 유행한 노래들로 '회전의자', '빈대떡 신사' 그리고 신신애의 '세상은 요지경' 등도 여기에 속한다 하겠습니다.

이 노래는 당시 꽤 많은 인기를 얻어 1960년대에 들어서도 많은 가수들이 시대에 맞춰 가사를 조금씩 고쳐가며 재녹음을 하였습니다.

리메이크를 진행할 때에도 제목에 백만 원이라는 문구는 그대로 남겨둘 정도로 원곡의 인지도는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김정구는 박달자와 함께 듀엣으로 '나에게 백만 원이 생긴다면'으로 제목을 약간 바꿔 불렀고, '김용만과 차은희', '쟈니브라더스'와 '아리랑시스터즈'도 이 곡을 리메이크하여 불렀습니다.

현재 가장 많이 알려진 버전은 김용만 차은희가 부른 혼성 듀엣 곡입니다.

 

🎵 김정구, 장세정의 원곡 (1937)과 100만 원의 가치

 

(男) 만약에 백만 원이 생긴다며는
(女) 금비녀 보석반지 하나 살테야 흐응~
(男) 그리고 비행긔도 한 대 사놋치
(女) 하눌 공중 놉히 떠
(男) 빙글빙글 돌아서
(男女) 아서라 백만 원에 꿈을 꾸다가 청춘의 이남박을 뒤집어 쓰겠오

(男) 만약에 백만 원이 생긴다며는
(女) 그란드 피아노도 한 대 살테야 흐응~
(男) 요긋의 욕심이란 부랑당 不汗黨이야
(女) 안 사주면 난 실혀
(男) 울기는 또 왜 울어
(男女) 이것 참 야단 났군 백만 원 꿈에 부부간 夫婦間 가정대전 家庭大戰 폭발이 되겠오

(男) 만약에 백만 원이 생긴다며는
(女) 인조견 人造絹 치마 적삼 해 입을 테야 흐응~
(男) 남은 건 막걸리나 죄다 삽시다
(女) 그건 사서 뭘 해요
(男) 두고 먹지 무얼 해
(男女) 아서라 헛소리에 헛꿈 꾸다가 보리밥 비지찌개 다 식어 버렷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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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하춘화는 고봉산과 함께 위와 같은 가사에 '백만 원'만 '천만 불'로 바꿔 '만약에 천만불이 생긴다면'이라는 제목으로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 곡이 쓰일 당시에 백만 원이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 따져보았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서울의 웬만한 집 한 채 값이 500원이었다고 하니 백만 원이면 어지간한 집 2,000채 정도의 가치가 되겠습니다. 2020년 서울시내 아파트 가격이 평균 10억 원이라고 하니 당시의 100만원은 지금 가치로는 2초원 가량 되는 정말 어마어마한 거액입니다. 1절에 '비행긔도 한대 사놋치'라는 말이 황당한 가사가 아닌 것입니다.

 

🎵 김용만, 차은희의 커버곡 (1963)과 100만 원의 가치

(男女) 만약에 백만 원이 생긴다면은 (女) 백금에 보석반지 하나 살테야 흐응~
(男) 그리고 텔레비도 한대 사놓지
(女) 그것 참 좋아요.
(男) 너무 좋아 말어라
(男女) 아서라 백만 원에 헛꿈 꾸다가, 다 썩은 레디오도 하품을 하겠네~

(男女) 만약에 백만 원이 생긴다면은
(女) 그랜드 피아노도 한대 살테야 흐응~
(男) 그리고 자가용도 한대 사놓지
(女) 아이 참 좋아라
(男) 너무 굴지 말아라
(男女) 이것 참 야단 났네 백만 원 꿈에 엉터리 토정비결 믿은 게 바보야

(男女) 만약에 백만 원이 생긴다면은
(女) 타이루 양옥집을 높이 질테야 흐응~
(男) 그리고 로케트로 달나라 가지
(女) 아이 참 무서워
(男) 누가 태워 준다냐?
(男女) 아서라 백만 원에 잠꼬대 말고, 광나루 공영주택 수속을 해보자

 

이 곡이 녹음된 1963년은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뺏은 박정희가 군에서 '국가재건 최고회의'에서 예편한 후 민정이양의 약속을 깨고 대통령으로 출마/당선된 해입니다.

민정이양의 약속을 어기고 끝내 권력을 차지한 군부와 첨예한 갈등도 있었겠지만, 새로운 권력에 대한 기대도 공존하는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럼 마찬가지로 1963년 백만 원의 가치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1963년 즈음의 서울지역 아파트 가격은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었습니다만 평균 평당 5만 원 내외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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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평 아파트의 경우 150만 원 정도로 추정이 가능하며, 현재 아파트 평균 가격 10억 원과 비교해보면 약 667배 정도가 됩니다. 즉, 1963년의 백만 원은 지금 가치로는 6억 6천 7백만 원 정도가 되겠습니다.

 

 

III. 시대별 욕망의 변화

두 곡의 가사를 비교해 보면 재미있게도, 1936년부터 1963년까지 27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백만 원으로 하고 싶은 것들도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곡의 '금비녀, 보석반지'가 '백금 보석반지'와 텔레비전'으로 세간살이가 추가 되었고,

'그랜드 피아노 한 대'는 '그랜드 피아노와 자가용'으로 사치품으로 자가용이 새롭게 등장합니다.

'인조견 치마 적삼'은 '타이루 양옥집'으로 규모자체가 달라졌습니다.

 

곡의 마지막 가사는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라'고 면박을 주는 부분입니다.

1937년 원곡의 마지막 가사는 '비지찌개'로 일제강점기에서의 소박한 평안이 현실의 행복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1963년의 마지막은 급격한 도시 쏠림으로 서울의 주택보급률이 54% 밖에 되지 않는, 내 집 마련이 가장 간절한 시기라서인지 '광나루 공영주택 청약'이라는, 생존보다는 좀 더 나은 생활이 더 간절한 일상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비지찌개의 행복보다 집을 갖는 것이 더 간절해 진 것이 서민들의 입장에서 더 살만해진 것인지 아닌지는 잘 판가름이 되질 않습니다.

 

2022년에 이 곡을 다시 녹음한다면 어떤 가사가 붙을 수 있을 지 생각하게 됩니다.

2022년의 우리에게는 생존이 화두인지, 더 나은 생활이 화두인지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1939년의 우리와 1963년의 우리는 텔레비전과 인조건 치마 적삼과 막걸리로 일상의 쾌락을 희망하고 기껏해야 자가용을 욕망하였지만, 지금의 우리는 백만 원이든 6억 6천 7백만 원이든 아니면 2조 원이든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좀 더 염치없어지고, 좀 더 천박해진 것은 자본주의의 속성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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