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사티 Erik Satie와 짐노페디 Les Trois Gymnopédies 이야기

단순하기 그지없는 반복적인 멜로디와 신비로운 분위기의 고요한 선율이 영상과 꽤 잘 어울리는지 '코리나 코리나', '사랑이 머무는 풍경', '기네스 펠트로우의 졸업' 등 수많은 영화에 OST로 삽입된 클래식 음악이 있습니다.
'Erik Satie 에릭 사티'가 우리 나이 스물두 살에 만든 'Les Trois Gymnopédies 세 개의 짐노페디'는 1888년 발표된 이래 그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로 사티의 대표작이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많은 CF와 영화, 애니메이션 등에 삽입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에릭 사티와 그의 대표작 짐노페디에 대해 정리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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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k Satie Trois Gymnopedies Album Jacket

I. 에릭 사티 ・ Erik Satie

Erik Satie
Erik Satie (사진 : Online Piano Lessons)

에릭 사티의 풀 네임은 Eric Alfred Leslie Satie (에릭 알프레드 레슬리 사티)이며, 1866년 프랑스의 노르망디에서 프랑스인 아버지 Alfred Satie와 영국인 어머니 Jane Leslie 사이에서 태어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Erik Satie라는 이름은 1884년 이후 에릭 사티가 작품을 발표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티는 여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남동생과 함께 조부모의 손에 자라다가 열두 살에 다시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일 년 후인 1879년, 아버지와 결혼한 피아노 교사이자 작곡가인 새어머니는 사티를 음악가로 만들고 싶어 했고, 사티는 파리 음악원에서 쇼팽에게 피아노를 배우기도 하였습니다.

1882년 사티는 재능은 있지만 게으른 학생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결국 음악원에서 제명되었고, 1886년 입대할 때까지 몇 개의 짧은 피아노 곡을 만들기는 했지만 음악보다는 종교에 심취했었다고 합니다.
이 시기 그는 그레고리안 성가와 고딕 교회 건축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피아노 곡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1885년 재입학한 음악원을 떠나고 싶어 이듬해 군대에 지원했으나, 곧 군대생활이 음악원만큼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티는 한겨울에 일부러 찬바람을 맞는 노력을 통해 급성 기관지염에 걸리게 되고, 결국 3개월간의 요양 끝에 제대를 합니다.
그리고 1887년, 스물한 살의 사티는 몽마르트르 남쪽의 카바레 '검은 고양이'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여러 예술가들과 어울리게 되는데 이때 그의 대표작 '세 개의 짐노페디 Les Trois Gymnopédies'를 발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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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노페디에서 얼핏 느낄 수 있듯이 그의 곡은 굉장히 대담하고 실험적인 면이 강했습니다. 당시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것은 전통적인 형식과 화려한 기교 그리고 과도한 감정표현을 강조한 낭만주의 음악이었는데 사티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배제한 가장 단순한 선율의 편안한 음악을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1880년대 후반 그는 작곡에 대한 실험적인 접근방식에 공감한 클로드 드뷔시와 가까운 친구가 되기도 하였고, 신비로운 종파인 '성전과 그라할의 가톨릭 장미 십자가 훈장 Ordre de la Rose-Croix Catholique du Temple et du Grahal'의 작곡가로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사티는 시대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지 않았으므로 그때까지 작곡가로서는 거의 이름을 얻지 못했었습니다. 그는 카바레 피아니스트로서 100여 곡의 대중음악을 피아노 곡으로 편곡하여 카바레에서 연주하며 힘들게 생계를 꾸리다가, 40대 중반인 1911년이 되어서야 일반 대중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해 보수 성향의 국립음악협회와 경쟁하기 위해 모리스 라벨(Joseph Maurice Label) 등이 설립한 전향적인 그룹인 Societé musicale indépendante가 그들의 콘서트에서 사티의 작품을 연주하며 에릭 사티는 갑자기 '음악 혁명의 선구자이자 사도'로 인식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젊은 작곡가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신작 의뢰가 밀려들며 마침내 카바레 일을 그만두고 작곡에 전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Santiago Rusiol - The Bohemian (portrait of Erik Satie in his studio in Montmartre) 1891
Santiago Rusiol (산티아고 뤼시뇰)의 그림 : The Bohemian (몽마르트에 있는 에릭 사티의 스튜디오에 있는 초상화), 1891작

 

에릭 사티는 기이한 성향으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데, 그는 전화, 축음기, 라디오와 같은 문명의 혁신에 대해 반감이 느껴질 정도로 무관심했었다고 합니다.
그는 녹음을 한 적이 없었고, 알려진 바로는 라디오 방송은 평생 단 한 번 들었으며, 전화 역시 한 번 걸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무척이나 깔끔한 복장과 외모였지만 그의 방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으며, 그가 죽은 후 쌓인 쓰레기 더미에서 그때까지 잃어버린 것으로 알려졌던 중요한 작품들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경제관념이 상당히 희박해서 젊을 때에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생활했었고, 작곡으로 수입을 얻기 시작했을 때는 수입이 생기자마자 써버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나눠줘 버렸기 때문에 항상 형편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이들과는 사이가 좋았지만 어른들과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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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그의 동료였던 Picabia는 사티에 대해 아래와 같이 평했습니다.

사티는 굉장히 특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장난스럽고 교활한 늙은 예술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매우 감수성이 풍부하고, 오만하고, 정말 우울한 어린아이 같았지만 가끔 술에 취하면 무척 낙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그가 참 좋았습니다.

사티는 성인이 된 후 항상 술을 많이 마셨고, 1925년에 간경화 진단을 받고 파리의 Saint-Joseph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됩니다.

1925년 7월 1일 오후 8시. 에릭 사티는 59세의 나이로 병원에서 사망하였습니다.

 

 

II. 세 개의 짐노페디 ・ Les Trois Gymnopédies

'짐노페디 Gymnopédie'는 젊은 남자들이 벌거벗고 전쟁을 연상시키는 춤을 추는 연례 축제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 단어 Gymnopaedia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사티와 그의 친구 'Alexis Roland-Manuel 알렉시스 롤랑 마누엘'은 'Gustave Flaubert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Salammbô 살람보'를 보고 영감을 얻어 제목을 지었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J.P. Contamine de Latour 콩파민 드 라투르'의 시를 그 원천으로 보고 있습니다.

짐노페디의 정식 곡명은 '세 개의 짐노페디 Les Trois Gymnopédies'이며 세 개의 짧은 삼박자 피아노 곡으로 구성된 피아노 독주곡 모음집입니다.
1888년 첫 번째와 세 번째 짐노페디가 발표되었고, 두 번째 짐노페디는 1895년이 되어서야 발표되었습니다.

세 개의 짐노페디는 아래와 같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 1번. Lent et Douloureux (D장조 / D단조) / 느리고 고통스럽게
  • 2번. Lent et Triste (C장조) / 느리고 슬프게
  • 3번. Lent et Grave (A단조) / 느리고 장중하게

'느리고 고통스럽게', '슬프게', '장중하게'와 같은 각각의 연주 지시와 일치하는 분위기의 곡로서, 1번은 D장조의 느리고 평화로운 멜로디로 시작해서 D단조의 불안정한 분위기로 끝나는 곡으로, 우리가 짐노페디 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가장 유명하고 익숙한 곡입니다.
2번은 조금 밝은 분위기의 C장조 곡이며, 3번은 1,2번보다 조금 느리고 우울한 A단조의 곡입니다.
3박자의 왈츠와 같은 느린 피아노 연주곡은 놀라우리만큼 과감하면서도 안정감을 주는 단순한 선율로, 듣다보면 참 우울하고 고독함을 느끼게 해주는 특이한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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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로 내려오면서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는 '가구 음악 Musique d"Ameublement'이라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를 잡게됩니다. 그리하여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않고 가구처럼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감으로 우리 삶의 공간에 녹아든 음악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짐노페디는 1965년 미국의 재즈 음악가 'Yusef Lateef 유세프 라테프'에 의해 처음 음반으로 발매된 이후 Secondhandsongs.com 기준 76개의 커버 버전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III. 여러 버전의 짐노페디 들어보기

First Gymnopédie by Yusef Lateef (1965)

미국의 재즈 연주자 Yusef Lateef의 녹음본입니다.

 

Gary Numan – Trois Gymnopedies (1980)

영국의 뉴웨이브 음악가 게리 누먼의 뉴웨이브 버전입니다.

 

Dominic Miller – Gymnopédies No.1 (2003)

스팅의 사이드맨이자 여러 장의 솔로 앨범을 발매한 아르헨티나 태생의 기타리스트 도미닉 밀러의 팝 버전입니다.

 

Spinphony – Christmas Time Gymnopédie (2018)

팝 바로크 음악을 직접 편곡하여 연주하는 일렉트릭 현악 사중주팀 스핀포니의 크리스마스 버전입니다.

 

 

※ 함께 들으면 좋은 노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