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즘 Anarchism, 우리가 흔히 '무정부주의'라는 말로 해석하는 이 사회주의 사상의 한 분파이자 철학은 참 매력적입니다.
아나키즘은 국가나 정부기구 등 개인을 지배하는 일체의 권력을 부정하고 배척하며, 개인을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절대 자유의 경지에 두려는 정치철학이자 운동을 말합니다.
아나키즘은 프랑스혁명 이후, 시민과 민중을 억압하는 권력과 권위에 대한 저항을 실천하는 젊은이들에게 유토피아를 제시하는 가장 극단적인 좌파 운동이었습니다.
또한 민족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페미니즘, 환경 생태주의, 자연주의 등 무수한 이념과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분파를 형성하고, 광범위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사상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아나키즘의 기본적인 이해와, 근대 한국에서 아나키즘이 가장 부흥했던 시기의 역할, 그리고 한국의 아나키스트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I. Anarchism • 아나키즘 • 무정부주의
1. 정의
어떠한 강권이나 지배에 반대하고 민중의 행동에 의한 사회 혁명을 통해 개인의 절대 자유가 보장되는 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사상
2. 어원
'지배자가 없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anarkhia(아나르히야)를 어원으로 합니다.
Anarchism이라는 영어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1642년이라고 합니다. 그 후 프랑스혁명 시기에 다양한 파벌들 사이에서 거론되었으며 '윌리엄 고드윈'(1756~1836,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정치철학자)이나 '빌헬름 바이틀링'(1808~1871, 독일의 급진 정치운동가) 같은 혁명가들이 발전시켰으며, 19세기 중반 '피에르 조제프 푸르동 Pierre-Joseph Proudhon'(1809~1865)이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지칭하며 아나키즘의 공식적인 탄생을 알렸습니다.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라고 번역하기 시작한 것은 1902년 당시 도쿄대 학생이었던 '게무야마 센타로 煙山專太郞'가 펴낸 '근세 무정부주의'라는 책에서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로 번역하면서부터입니다.
그러나 무정부주의라는 말은 무정부 상태를 뜻하는 아나키(Anarchy)에서 확장하여 번역한 것으로 실제 아나키즘과는 차이가 크다 하겠습니다.
실제로 아나키스트들도 정당 활동에 참여하고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현재는 '무정부주의'라는 단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아나키즘'을 그대로 사용하는 추세입니다.
3. 내용
국가 권력에 대한 반대가 아나키즘 사상의 중심이며, 아나키즘을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 비 강압적 사회에 대한 의지
- 국가 기구에 대한 거부
- 인간 본성이 비 강압적인 사회에 존재하거나, 그러한 사회로 진보하도록 한다는 믿음
- 무정부 상태의 이상을 추구하기 위한 행동 제안
아나키즘은 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추구합니다.
권력과 사회 제도 및 국가는 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가로막는 것으로 정의하고 이를 타파하고 개인의 자유 의지에 따라 운영되는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목표로 합니다.
이때 국가 권력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최대의 강제적 권력으로 상정되며, 아나키스트들은 국가를 타도할 때 민중의 직접 행동에 따른 사회 혁명의 방식을 추구합니다.
II. 한국의 아나키즘
한국의 아나키즘은 1910년 국권 상실을 계기로 민족 해방 운동의 이념 중의 하나로 수용되었습니다.
아나키즘은 당시 제국주의의 식민지배 정당화 이론인 사회진화론을 극복하는 사상으로 각광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사회 진화의 동력이 개인들 사이의 자발적인 협동 관계에 있다고 주장하는 상호부조론'이 수용되었습니다.
한국의 아나키스트들은 일본 제국주의를 최고의 강제 권력으로 규정하고 이로부터의 해방을 목표로 행동하였습니다.
근본적 아나키스트들의 일제 저항은 개개인의 자유 추구를 위한 것이지 민족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민족해방 운동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민족주의자들이 추구하던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비판하였고, 공산주의 세력이 주장했던 프롤레타리아 독재 또한 강제 권력의 하나로 규정하고 배격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기 한인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도 방법론에 따라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의열단으로 대표되는 폭력 투쟁을 통한 직접 행동론입니다. 폭력 투쟁을 민중을 각성시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제시하고 일제에 대한 전방위적 무력 투쟁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혁명 근거지 건설론입니다. 이는 농촌의 공동체를 기반으로 농민 자치의 아나키스트 사회를 건설해 민족 해방 운동과 아나키스트 혁명의 근거지로 삼아 주변으로 확산시키려는 방법입니다. 주로 재중국 한인 아나키스트들이 실천한 방식입니다.
마지막으로 파업과 태업 등 경제적 직접 행동론과 일상 투쟁론이 있습니다. 주로 국내나 재일본 아나키스트들이 주로 실천한 방안입니다.
이러한 세가지 행동론은 무력 투쟁 활동에 대한 지속적인 검거와 탄압, 일제의 만주침략 등으로 큰 성과를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아나키스트들은 1930년대 후반 민족전선론을 제기하며 민족국가 건설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고, 해방 후에는 민족 국가 수립을 우선시하며 국가 수립 이후에 아나키스트 사회를 달성하자는 단계적 혁명론을 견지하면서 국가 건설의 주체로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지지하였습니다.
III. 한국의 아나키스트 • Anarchist
우리에게 알려진 대표적인 한국의 아나키스트 몇 명을 소개합니다.
1. 김원봉 (1898 ~ 1958)
의열단장 밀양사람 김원봉은 대표적인 아나키스트로 알려져 있습니다.
독립운동가로서 의열단을 조직하고 많은 일제 요인 암살과 식민통치기관 파괴 활동을 이끌었으며, 군사조직 조선의용대를 창설하여 중국 국민당 정부와 협력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무장투쟁만을 강조하며 우익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과 임정 요인들과 갈등이 많았으며, 좌익 독립운동 단체 내에서는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혁명가들과 다툼이 많았습니다.
1948년 월북하며 북한 정권 수립 과정에서 배려를 받았으나 1958년 숙청되어 사망했다고 추정됩니다.
2. 박열 (1902 ~ 1974)
'불령사'로 유명한 박열 역시 가장 많이 알려진 아나키스트입니다.
보통학교 재학 시 3.1 운동과 관련되어 퇴학을 당한 뒤, 일본으로 건너간 박열은 1920년 최초의 아나키즘 단체인 흑도회를 조직하였으며, 이후 일시 귀국하여 조선 최초의 아나키즘 단체인 '흑로회 黑勞會'를 조직하였습니다.
1923년 비밀결사 '불령사'를 조직하고 반일 활동을 하던 중 체포되어 수감되었고 22년 2개월 동안 복역한 끝에 해방 이후인 1945년 10월 27일 마흔세 살의 나이로 석방되었습니다.
해방 후 서울에서 거주하다 한국전쟁 도중에 납북되었으며, 1974년 평양에서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3. 신채호 (1880 ~ 1936)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민족주의 사학자이자 사회주의자인 신채호 역시 매우 과격한 아나키스트였습니다.
신채호는 일체의 타협주의를 배격하고 폭력 혁명론을 주장한 극렬 아나키스트로, 민족주의 사학자로 활동하던 중 1917년 러시아 혁명을 계기로 사회주의에 경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민중의 힘을 자각하게 되면서 그간 자신의 사상적 근간이었던 민족주의, 영웅 중심주의 사관을 버리고 아나키즘으로 전향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아나키스트인 약산 김원봉의 부탁을 받아 의열단 선언문인 '조선혁명선언'을 지었는데 여기에는 '우리 조선인 한 사람이 일본인 한 사람씩을 죽이다 보면 언젠가는 일본인이 전멸할 것이며 내가 2명을 죽이면 조선인 1명을 살리는 일이며 내가 10명을 죽이면 조선인 9명을 살리는 길이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신채호는 아나키즘의 대표적 인물인 러시아 철학자 크로포트킨의 '청년에게 고함'을 읽고 감명하여 아예 그를 예수급 성인의 반열에 두기도 하였으며, 텐진 아나키스트 대회에서는 '정부는 기득권이 무산계급을 착취하는 인육분쇄소'라는 강도 높은 비판을 하였습니다.
단재 신채호는 1936년 뤼순감옥에서 뇌일혈로 의식을 잃었고, 3일간 방치되었다가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4. 이회영 (1867 ~ 1932)
조선말 10대 부자에 들던 집안의 재산을 모두 처분한 후 만주로 이주하여 한인 단체 경학사와 후일 신흥무관학교가 되는 신흥강습소를 건립하여 국내, 연해주, 상하이 등의 독립운동 조직에 참여한 이회영도 유명한 아나키스트입니다.
남화 연맹 등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단체를 결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고, 백정기 등과 함께 항일구국연맹, 흑색공포단 등을 조직하였습니다.
서간도에 이어 만주와 대련 지역에 거점을 만들고 항일투쟁을 계획하였으나 밀정들의 밀고로 체포되었고, 체포된 지 나흘 만에 고문으로 옥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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