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의 이해 (정의, 문학・음악・미술에서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구분)

2023년 2분기를 기준으로 OTT 서비스를 제외하고 지상파와 종편만을 기준으로 9개의 방송국에서 모두 30개의 드라마가 방송되었습니다. 물론 개막과 종영이 겹친 작품들이 있기 때문에 1년에 120편이라고 단순히 계산할 수는 없지만 9개 방송국만을 대상으로 집계한 수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상 이상으로 많은 드라마가 제작되고 방송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각종 OTT 서비스에만 제공되는 작품들까지 포함한다면 한 해 제작되는 드라마가 500편이라는 소문이 과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수년 전부터 장르물 전성시대라는 뉴스 기사가 꾸준히 등장하고 있습니다.

매 분기마다 어김없이 편성되는 장르물 드라마들을 통해 우리는 장르물이라고 하면 '타임슬립이 일어나거나 좀비나 마녀와 같은 인간 이외의 존재가 등장하는 환상적인 장치가 있거나, 아니면 유혈이 낭자한 장면에 잔혹한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작품'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러나 정작 장르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 정의를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오늘은 문학과 영상예술의 범주에서 이제는 확고한 영역을 차지한 장르물, 장르소설 등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장르물포스터

 

 

I. 순수예술(純粹藝術)과 대중예술(大衆藝術)

우리는 교과서에서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순수문학(純粹文學)은 순문학이라고도 하는데, 도구성·이념성·목적성을 배제하고, 현실과 시대의 상황과는 무관하게 예술로서의 작품 자체에 목적을 둔 문학을 말합니다.

반면에 참여문학(參與文學)은 순수문학의 반대 개념으로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문제 해결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에 서 있는 문학을 말합니다.

그러나,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문학이라는 것과 위에 설명한 두 가지 문학사조는 모두 등단을 통해 인정받은 작가들이 활동하는 세계, 소위 문단 문학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이들 문단 문학계의 작가나 평론가들은 나름의 견고한 성 안에서 해당 범주를 벗어나는 작품과 작가에 대해서는 배타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1981년 '인간시장'의 김홍신 작가나 1993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김진명 작가처럼 제대로 된 등단 절차 없이 대중적 인기를 얻은 작가와 작품에게는 통속소설이라는 딱지와 함께 작품성을 폄훼하는 분위기가 존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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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은 크게 보아 모두 순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순문학의 개념과 대응하는 것이 바로 교과서에서 가르치지 않는 문학, 대중문학이겠습니다.

장르문학의 시작은 이러한 순문학과 참여문학의 범주를 벗어난 통속소설 또는 대중문학이라는 분류의 발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순문학과 구분되는 상업 지향적인 문학작품들을 따로 대중문학으로 분류하였고, 이러한 대중문학의 분류에 속하는 작품들 중의 일부가 특히 추리소설, 무협소설, 연애소설, SF소설, 판타지 소설과 같은 특정 장르적 편향성을 강하게 나타내면서 대중문학과 장르문학은 이제 거의 동일한 의미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즉, '대중문학은 장르문학이다'라고 등치하기는 힘들지만, '장르문학은 대중문학과 다름이 없다'라고 인식된다는 말입니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구분이 문학계의 분류라면 다른 분야에서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가 있는데, 음악계라면 예술음악과 대중음악으로, 미술계에서는 순수미술과 응용미술로 크게 구분이 가능하겠습니다.

 

문학, 음악, 미술을 묶어 예술이라는 큰 범주로 보았을 때 순수문학·예술음악·순수미술은 순수예술(Fine Arts) 또는 고전예술이라고 하고, 대중문학·대중음악·응용미술은 대중예술(Popular Arts)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순수예술 애호가들은 대중문화는 감정적이고 야만스러워 관객에게 정서적으로 해롭다고 주장하고, 이에 대해 대중문화 애호가들은 순수예술 작품은 난해하고 고립적이며 일반 대중이 향유하기에는 너무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II. 장르문학(Genre 文學)의 등장

장르물2

소설이라는 창작물을 종이책으로만 볼 수 있었던 시절, 신문사나 출판사의 콘테스트인 '등단'이라는 형식은 거의 유일한 데뷔 채널이었습니다. 그 시절 등단을 거치지 않은 작가와 작품이 역외자로 취급받는 것은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러던 대한민국에 1980년대 후반 PC통신이 등장하고, 케텔, 하이텔, 천리안의 소설 게시판에 수많은 이용자들이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진정한 장르문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하겠습니다.

PC통신을 거쳐 인터넷 소설 시대로 진입하면서 주목받는 작가와 작품들이 등장하였고, 화제작들이 종이책으로 출간되고, 영화로 제작되면서 인터넷 소설만의 주제·작법·특징 등은 종이책 시대의 통속소설과는 또 다른 분류의 필요성을 요구하였습니다.

기존의 장르에 현대 판타지, 밀리터리, 게임, SF, 대체역사, 신무협 등 새로운 장르가 창조되면서 장르문학이라는 명칭의 새로운 카테고리로 묶어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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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의 장르문학 시장은 네이버, 카카오페이지, 문피아, 조아라 등 웹소설 플랫폼에 누구나 자유롭게 기고하여 독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선택된 작품이 유료화되고 전자책과 종이책으로 출판되는 순서의 유통 사이클을 완성하였습니다.

 

한국의 순수 문학계는 장르문학에 대해 저급하고 유치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예술로서 인정하지 않는 듯합니다.

등단이라는 검증과정을 거치는 순수 문학계와 달리 누구나 '상품'을 만들어 시장의 판단을 기다릴 수 있는 장르 문학계의 시장이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진다는 믿음에 기반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시리즈'는 판타지 소설이고, '영웅문'과 '천룡팔부'는 무협소설이며, '코난 도일'과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들이 장르 문학인 것처럼, 이우혁의 '퇴마록'과 김경진의 밀리터리 소설 '데프콘' 역시 장르문학입니다.

해외의 작품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유독 국내 장르문학 작품에 대해서는 백안시하는 풍조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III. 그렇다면 장르물이란 무엇인가?

장르물

앞서의 내용을 정리하면 장르소설은 특정 장르적 편향성을 강하게 나타내는 상업 지향적 문학작품을 말한다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드라마 작품으로서의 장르물이라 함은 특정 장르적 편향성을 강하게 나타내는 영상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장르적 편향성이 강하다는 것은 작품 전반의 서사가 판타지·추리·스릴러·호러 등과 같은 특정 장르적 속성에 집중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작품 전반의 서사가 가진 장르적 속성이 분류의 기준이라는 것은 등장인물이 아니라 사건이 중심인 작품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2014년 썰전에서 '장르물 전성시대'라는 주제로 진행된 방송에서 패널로 참석한 작가 '허지웅'은 '장르'와 '장르물'이라는 용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장르(Genre)와 장르물(Genre物)에 대하여
'장르'라는 용어를 넓은 의미로 쓰느냐 좁은 의미로 쓰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보통 장르라고 하면 형식이나 소재, 이야기 구조 등이 비슷한 작품들을 한데 묶은 분류 기준이고, 장르물이라고 하면 우리가 '본격 장르'라고 하는 추리, 호러, SF 이런 식으로 장르의 문법이나 법칙에 서사 자체가 끼워 맞춰져 있는 그런 것들을 말합니다.
미국 역사를 보더라도 폭발적으로 장르문학이 발전했던 때가 있었는데, 매카시 열풍,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사건 등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수요자층은 뭔가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설명되는, 음모나 사건이 명확히 해결되는 장르물을 선호하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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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장르물이란 인물보다는 특정 장르적 속성에 맞춰 사건이나 서사를 중심으로 줄거리를 이어나가는 영상물을 말한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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