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이란? 문학 기법 설명, 이상의 날개부터 TS 엘리엇까지

의식의 흐름의 이해와 사례 4가지 작품 소개 ⁚ Stream of Consciousness

많은 글에서 '의식의 흐름'이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냥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처음 든 생각은 '생각이 가는 대로, 그 어떤 맥락과도 무관하게 머리 속에 떠오르는 대로 글을 이어 나간다'라는 뜻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의식의 흐름'이란 표현은 글을 쓴 사람들은 본인의 글에 대한 변호의 일환으로, 글을 읽는 사람들은 만족스럽지 못한 글에 대한 일종의 조롱의 뜻을 담아 사용하는 표현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그러나 사실 '의식의 흐름 Stream of Consciousness'라는 개념은 문학에서는 매우 진지하고 중요한 개념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인터넷이 오염시킨 전문용어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표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의식의 흐름 디지털 일러스트 ryan hatton
Digital illustration by Ryan Hatton

 

 

I. 의식의 흐름 • Stream of Consciousness /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2006년 발간된 문학비평용어사전에 의하면 '의식의 흐름'은 1910년대 영국 문학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기법으로, 현대소설 특히 심리주의 소설의 실험적 창작 기법이라고 합니다.

소설 속 인물의 파편적이고 무질서하며 잡다한 의식 세계를 자유로운 연상작용을 통해 가감 없이 그려내는 방법을 말합니다.

여기서 '의식 Consciousness'이라 함은 '무의식 Unconsciousness'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현상학에서 '의식'은 대상의 중심이며 언제나 '무엇인가에 대한 의식'을 뜻합니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표현은 미국의 심리학자 'William James 윌리엄 제임스 (1842~1910)'가 1890년 사람의 정신 속에서 생각과 의식이 끊어지지 않고 연속된다는 것을 말하면서 처음 쓴 말입니다.

소설 창작 기법으로서 '의식의 흐름'은 소설 속 인물의 혼란스러운 의식세계를 자유로운 연상작용을 통해 그대로 표현해내는 문학적 방법일 뿐이며, 실제 의식의 흐름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는 소설은 외적 사건보다 인간의 내적 실존과 내면 세계의 실체에 관심을 집중합니다. '내적 독백'은 '의식의 흐름'의 또 다른 명칭이자 '의식의 흐름'을 나타내기 위한 기법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의식의 흐름'을 개발한 심리주의 소설은 인간을 '심리적 존재'로 파악합니다.

심리주의 소설에서 인간의 행동은 그의 심리적 동기를 설명하는 증거로 활용되며, 인상·회상·기억·반성·사색과 같은 심적 경험이 소설의 주된 내용을 이루게 됩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이 의식의 흐름 기법을 활용한 심리주의 소설의 대표작이며, 제임스 조이스는 '피네간의 경야'라는 작품에서 무의식의 흐름까지 서술하고자 하였습니다.

우리 문학에서 '의식의 흐름' 기법을 선구적으로 형상화한 작가는 바로 '이상'입니다.

이상의 '오감도' 연작, '거울', '날개', '종생기' 등의 시와 소설에는 복잡하고 기묘한 의식의 파편들이 인간의 내면세계를 축약한 암호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오상원'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 '유예'에서 총살을 당하는 병사의 의식의 흐름을 치밀하게 서술하였으며, 최근 작가들 중에서는 '이인성'이 소설 '낯선 시간 속으로', '한없이 낮은 숨결' 등에서 혼돈에 찬 중층적 의식세계를 올곧은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형상화 하고 있습니다.

즉, 문학비평용어사전에서는 '의식의 흐름;은 아래와 같은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고 정리하였습니다.

  1. 인물의 심리 묘사에 치중한 서술
  2. 등장인물 간의 대화보다는 내적 독백에 치중한 서술
  3. '시간의 흐름'보다는 인물의 내면 의식을 중심으로 전개되므로 시제 혹은 시간 표현이 모호함

 

※ 심리소설 : 작품 속 인물의 심리적 흐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무의식 세계까지 파고들어가 인간 심리의 실체를 자세히 분석·해부·관찰하여 묘사한 소설

※ 현상학 : 내가 대상을 어떻게 느끼고 의식하고 있는 가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이러한 기술들로부터 의식의 보편적인 특징들과 조건들을 탐구하는 철학

 

인물의 사고 과정과 동등한 것을 글로 표현함으로써 개인의 관점을 묘사하려는 서술적 모드
A narrative mode that seeks to portray an individual’s point of view by giving the written equivalent of the character’s thought processes (Prnceton)

의식의 흐름은 윌리엄 제임스가 그의 저서 심리학 원리(1890)에서 깨어있는 정신의 지각, 생각, 감정의 흐름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문구이다. 그 이후로 현대 소설에서 서술 방법을 묘사하는 데 채택되었다.
"Stream of Consciousness was a phrase used by William James in his Principles of Psychology (1890) to describe the unbroken flow of perceptions, thoughts, and feelings in the waking mind; it has since been adopted to describe a narrative method in modern fiction" (Washin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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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의식의 흐름 • Stream of Consciousness / 사례 1

 

Comic by Grant Snider (24, September, 2021)

the stream of consciousness comic

 

I'd like to be a deeper person
좀 더 깊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to channel the torrents of my emotions
쏟아지는 내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to weather the droughts of anxiety
불안의 가뭄을 이겨내기 위해

to sort through the debris of memory
기억의 파편을 정리하기 위해…
but when I try to find a bridge
하지만 내가 다리를 찾으려 할 때

I'm stranded by self-consciousness
나는 자의식에 사로잡혀 있네.

 

이 만화는 미국의 그림책 작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인 Grant Snider가 그의 홈페이지 incidentalcomic.com에 게재한 컷만화 입니다. 그의 만화는 The NewYorker, 뉴욕 타임즈 북리뷰, The Kansas City Star, The Best American Comics 등의 지면과 인터넷에 게재되고 있습니다.

그림 전체가 의식의 흐름대로 진행되고 있으면서도 의식의 흐름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상의 '날개' (출처: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강영준 / 2013)

 

의식의 흐름 기법이 나타난 소설들은 읽기가 불편합니다. 일관성도 없고 우연적인 데다가 의미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는 것 같아서 이해도 어렵습니다. 많이 알려진 소설 중에 혹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작품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소설가 이상의 '날개'를 꼽을 것 같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장황하게 펼쳐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銀貨)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패러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소. 가증할 상식의 병이오.

나는 또 여인과 생활을 설계하오.
연애 기법에 마저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흘낏 좀 들여다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분일자(精神奔逸者) 말이오.
이런 여인의 반(半) – 그건은 온갖 것의 반이오 – 만을 영수(領受)하는 생활을 설계한다는 말이오.
그런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놓고 흡사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 쳐다보면서 낄낄거리는 것이오.
나는 아마 어지간히 인생의 제행(諸行)이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게쯤 되고 그만둔 모양이오. 굿바이

 

위의 글은 '날개'의 첫 부분입니다. 

사실주의 소설에서 첫 부분은 구성상 발단의 단계로, 대부분 시간적・공간적 배경을 제시하고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배경도 제시하지 않고 인물도 정확히 누군지 알 길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아무리 읽어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문장들이 나열되어 있지요. 육신이 흐느적거릴 때 정신이 맑다느니, 머릿속에 백지가 준비된다느니 하는 문장들은 단박에 의미가 전해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생각나는 대로 거침없이 서술하는 방식이 바로 '의식의 흐름 기법'입니다.

 

근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내면

이상은 어째서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소설을 썼던 것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 소설의 줄거리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작품의 주인공은 하릴없이 방안에서 뒹굴며 지내는 지식인입니다.

'나'는 하루 종일 아내의 방에 가서 화장품 냄새를 맡거나 돋보기로 화장지를 태우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나'는 아내가 주는 동전을 저금통에 모아 보기도 하지만 저금통을 변소에 빠뜨릴 만큼 돈에 관심이 없습니다.

'나'의 아내는 몸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여자입니다. 어느 날 '나'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아내는 그런 '나'에게 약을 먹이지요. '나'는 그 약을 두통약으로 생각하고 받아먹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약이 수면제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지요.

그러고는 집을 나가서 백화점 옥상에 올라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봅니다.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자 '나'는 비로소 의식이 깨어난 듯한 느낌을 받고 소설이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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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줄거리를 보면 주인공 '나'는 근대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식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아내는 자본주의 안에서 자신의 몸을 팔아서라도 생계를 유지하려 하지만 중인공은 그러지 못하지요. 그런 까닭에 주인공은 저금통을 변소에 빠뜨리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자본주의 사회에 녹아들지 못한 채 그것에 억압되어 정신적인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일까요?

자본주의에 저항할 힘도 없고 그렇다고 돈만 중요하게 여기는, 자본주의의 천박함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주인공의 정신적인 혼란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분열증적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드러내기에는 의미와 맥락이 잘 통하거나 문법을 잘 갖춘 표현보다 오히려 비문법적이고 뜻을 파악하기 힘든 표현들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의식의 흐름은 바로 이런 점에서 인물의 내면을 탁월하게 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

 

'Nathaniel Hawthone 나다니엘 호손'의 'The Scarlet Letter 주홍글씨'에서 주인공인 헤스터는 사생아의 아버지 이름을 알려주지 않음으로써 그녀의 남편을 괴롭힙니다. 의식의 흐름을 통해 헤스터의 남편인 로저는 헤스터에게 그들이 떨어져 있는 동안의 자신의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그는 사랑과 삶의 온기가 없는 걸어다니는 석관으로 표사되고 있으며, 호손은 헤스터와 로저의 관계를 묘사하는 데에도 이 문학적 장치를 사용하여 로저의 성격을 묘사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로저는 헤스터와 결혼한 후 의학 및 과학 기술의 진화를 찾아 떠납니다. 로저의 존재 상태에 대한 이러한 고백은 로저가 헤스터의 사랑을 잃고자하는 의도가 없었다고 설명하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세상에 즐거움이라곤 없었소! 나의 마음은 손님을 초대할 객실은 많았지만, 난로 하나 없는 쓸쓸하고 냉랭한 커다란 집이나 다름없었소.
The World had been so cheerless! My heart has a habitation large enough for many guests, but lonely and chill, and without a household fire

주홍글씨 외에도 나다니엘 호손은 'The Minister's Black Veil 목사의 검은 베일'에서 1600년대 미국 식민지에서 검은 베일을 쓴 한 목사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호손은 검은 베일의 영향을 설명하기 위해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합니다.

검은 베일은 신비와 악에 싸인 부정적인 옷을 말합니다. 그들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목사가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식민지 주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목사는 공동체에서 가장 신성한 사람이어야 했는데, 검은 베일은 이것을 가려버리고 특히 그의 동료들 앞에서 목사가 보여지는 방식을 바꿔버립니다.

"'끔찍하군.' 한 노파가 예배당 안으로 절뚝거리며 들어서면서 말했다. "단지 천 조각으로 얼굴을 가렸을 뿐이지만, 목사님은 무시무시하게 변해버렸어."
" don't likt it", Muttered an old woman, as she hobbled into the meetinghouse. "He has changed himself into something awful, only by hiding his face.

 

 

T. S. Eliot, 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 1915

 

만일 나의 대답이 저 세상에 돌아갈
사람에게 하는 것이라고 내 생각한다면 이 불길은 이제
더 이상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러나 내가 들은 바가 참이라면 이 심연에서
살아 돌아간 이 일찍이 없으니, 내 그대에게
대답한들 수치스러운 염려 없도다.

그러면 우리 갑시다, 그대와 나
지금 저녁은 마치 수술대 위에 에테르로 마취된 환자처럼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 갑시다, 거의 인적이 끊어진 거리와 거리를 통하여
값싼 일박 여관에서 편안치 못한 밤이면 밤마다
중얼거리는 말소리 새어 나오는 골목으로 해서

굴껍질과 톱밥이 흩어진 음식점들 사이로 빠져서 우리 갑시다.
음흉한 의도로
싫증나게 질질 끄는 논의처럼 연달은 그 거리들은

그대를 압도적인 문제로 끌어 넣으리다.
아아, '무엇이냐'고 묻지는 말고
우리 가서 방문합시다.

방안에선 여인네들이 왔다 갔다
미켈란젤로를 이야기하며

유리창에 등을 비벼대는 노란 안개,
저녁의 구석구석까지 혀를 핥고서

수채에 괸 웅덩이 위에서 머뭇거리다가,
굴뚝에서 떨어지는 그을음을 등에 받으며,

테라스곁을 살짝 빠져 껑충 한 번 뛰고선,
아늑한 10월 달밤인 줄 알았던지,
집 둘레를 한 바퀴 핑 돌고선 잠이 들어 버렸다.

유리창에 등을 비벼대며
거리를 미끄러져 가는 노란 안개에도
확실히 시간을 있을 것이다.

앞으로 만날 얼굴들을 대하기 위하여 한 얼굴을 꾸미는 데에도
시간은 있으리라, 시간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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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와 창조에도 시간은 있으리라.

백 번이나 망설이고
백 번이나 몽상하고 백 번이나 수정할 시간은 있으리라.
토스트를 먹고 차를 마시기 전에.

방안에서 여인네들이 왔다갔다.
미켈란젤로를 이야기하며

정말 생각해 볼 시간은 있으리라.
'한번 해 볼까?' '해 볼까?'하고 망설일 만한 시간은

한복판은 대머리가 벗겨진 내 머리를 끄덕이며
발을 돌려 계단을 내려갈 만한 시간은
(여인들은 말하리라, 저 이 머리는 어쩌면 저렇게 벗겨진담.)

내 모닝 코트, 턱까지 빳빳이 치받치는 내 칼라
화려하고 점잖지만 수수한 핀 하나로 그 것을 나타내는 넥타이
여인들은 말하리라. '참 저 이 팔다리는 가늘기도 하지?'

한 번 해  볼까?
천지를  뒤흔들어 볼까?

이 일순간에도 시간은 있다.
일순간에 의하여 역전하는 결단과 수정의 시간을.

나는 이미 그 것들을 다 알고 있다. 다 알고 있다.
저녁과 아침과 오후를 알고 있다.

나는 내 일생을 커피 스푼으로 되질해 왔다.
저쪽 어느 방에서 음악에 섞여

갑자기 낮아지며 사라지는 목소리들도 나는 안다.
그러니 어떻게 내가 감히 해 볼 것인가?

그리고 나는 이미 그 눈들을 알고 있다. 그 것들을
모두 알고 있다.
공식적인 문구로 사람을 꼼짝 못하게 노려보는 눈들을

그리고 내가 공식화되어 핀 위에 펼쳐질 때
내가 핀 꽂혀 벽 위에서 꿈틀댈 때

어떻게 나의 생활 나의 태도의 한 토막 한 토막을
비로소 모조리 뱉어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감히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미 그 팔들을 알고 잇다. 그것은 모두 알고 있다.
팔지 낀 허옇게 드러나 팔들을
(그러나 램프 불에 보며, 엷은 갈색 솜털로 덮인)

내가 이처럼 제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는 것은
옷에서 풍기는 향기 때문인가?

테이블에 놓인 팔, 쇼올을 휘감은 팔
그러면 한번 해 볼까?
그러나 어떻게 말을 꺼낼 것인가?

이렇게나 말해볼까, 나는 저녁때 좁은 거리를 지나왔습니다.
샤쓰만 입은 외로운 사나이들이 창문으로 몸을 내밀고
뿜어대는 파이프의 연기를 나는 보았습니다라고

나는 차라리 고요한 바다 밑바닥을 어기적거리는

한 쌍의 엉성한 게 다리나 되었을 것을.

그런데 오후도 저녁도 저렇게 편안히 잠들었구나.
긴 손가락들도 쓰다듬어져서!
잠이 들었거나, 피곤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앓은 체 하는 것이다.

그대와 내 곁 여기 마루 위에 펼쳐서
차도 끝내고 케이크도 아이스크림도 먹고 났는데,
이제 내게 무슨 힘이 있어 이 순간을 한 고비로 몰아 가겠는가?

그러나 나는 울기도 하고, 단식도 하고, 울며 기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 머리(조금 벗겨지긴 했지만)가 쟁반 위에 놓여 들어오는 것을
보긴 했지만,

나는 예언자가 아니다.- 여기에 별로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나는 나의 위대한 순간이 가물거리는 것을 보았고,

영원한 '하인'이 내 코트를 잡고 킬킬 거리는 것을 보았다.
결국 나는 두려웠었다.

도대체 그 것이 보람이 있었겠는가?
잔을 거듭하고, 마멀레이드를 먹고, 차를 들고 나서,

화병을 옆에 놓고 내 그대와 주고 받는 이야기에서
그 것이 보람있었겠는가?

미소로써 문제를 물어 뜯어 버리고
우주를 뭉쳐서 공을 만들어

어떤 어마어마한 문제로 그 것을 굴려 간다한들
또는 '나는 주검으로부터 살아나온 자로다.

너희들에게 모든 것을 알리기 위하여 돌아왔다,
모든 것을 말하리라'고 말한들.

만약 어느 여인이 머리맡에 베개를 놓고서
'나 조금도 그런 뜻에서 말한 것 아네요,
조금도 그렇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한들,

아니다! 나는 햄릿 왕자가 아니다, 될 처지도 아니다.
나는 시종관 행차나 흥성하게 하고
한 두 장면 얼굴이나 비치고

왕자에게 진언이나 하는, 틀림없이 만만한 영장,
굽실굽실 심부름이나 즐겨 하고,

빈틈 없고, 조심성 많고, 소심하고
큰 소리치지만, 좀 머리가 뜨고

때로는 정말 바보같기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때로는 틀림없이 <어릿광대>

나는 늙어 간다… 늙어 간다.
바짓가랑이 끝이나 접어 입을까

머리를 뒤에서 갈라 볼까? 복숭아를 한번 먹어볼까?
흰 플란넬 바지를 입고 해변을 걸어 볼까?

나는 인어들이 서로 노래를 주고 받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그 인어들이 날 들으라고 노래 부르는 것은 아니겠지.

그 것이 물결타고 바다 안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흴락 검을락 물결이 바람에 불릴 때

뒤로 젖혀지는 파도의 흰 물머리를 빗질하며
우리는 적색 갈색의 해초를 두른 바다 처녀들에 섞여

바다의 방안에서 지금까지 머뭇거리다
그만 인간의 목소리에 잠이 깨어 물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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