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경단(Vigilante), 자경단원, 법적 문제, 형법의 역사, 엄벌주의와 사적제재 (자력구제, 사적구제) 이야기 (2025년)

자경단(Vigilante), 형법의 역사, 엄벌주의와 사적제재 (자력구제, 사적구제) 이야기

마블과 DC의 수많은 히어로들은 필연적으로 국가권력과 갈등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역사상 수많은 만화, 영화, 드라마에 등장했던 가상의 히어로들은 공권력의 통제를 벗어나고 죄형법정주의라는 법치주의의 기본 이념을 무시하는 존재들이므로, 작품 내에서도 꾸준히 공권력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애초에 공권력의 부족함, 불합리함, 미진함으로 인해 탄생한 존재들이니만큼 자경단이 수행하는 '정의구현' 활동은 공권력이 수행하지 못하는 엄벌주의를 집행함으로써 일반에게 대리만족의 쾌감을 제공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글은 현행 형법체계와 시민의 법 정서와의 괴리로 인한 문제들과 자경단에 관한 생각과 이야기를 정리한 것입니다.

 

자경단, 사적제재, 비질란테(vigilante) 이야기

 

I. 죄형법정주의와 형법의 발전

1. 죄형법정주의 • 罪刑法定主義

현대의 '법치국가(法治國家)'의 형법 제도는 '범죄와 형벌은 반드시 법률로써 정해져야 한다'라고 하는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죄형법정주의'의 근본적인 의의는 '국민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승인되는 국가권력의 '자기 제한(自己制限)'이라 하겠습니다.
즉, 죄형법정주의를 채택함으로써 권력의 총체인 국가권력이 자의적인 국가형벌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스스로 제한하는 근거를 만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형벌권의 남용이나 자의적인 적용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한 노력이며 또한 형법의 역사와 함께 발전한 개념입니다.

죄형법정주의 (출처 이미지투데이)
사진출처 : 이미지투데이

 

2. 형법의 발전

죄형법정주의의 근거가 되는 형법은 아래와 같은 순서로 발전하였습니다.

  1. 복수시대 (復數時代) : 고대사회에서 피해를 입은 것 이상의 손해를 입혀야 한다는 개념의 처벌
  2. 위하시대 (威嚇時代) : 일벌백계를 목표로 형벌을 국가화한 시기
  3. 박애시대 (博愛時代) : 형벌을 합리주의, 계몽주의, 민주주의, 온정주의에 기반한 법치주의 이념에  따라 법률화한 시기
  4. 과학시대 (科學時代) : 현대에 이르러 같은 범 범죄에 같은 처벌이 아닌, 상황과 원인을 반영한 차별적 처벌과 범죄인의 재사회화 즉, 교정과 교화에 중심을 둔 형의 집행을 시행하는 것
복수시대(復數時代) ⇨ 위하시대(威嚇時代) ⇨ 박애시대(博愛時代) ⇨ 과학시대(科學時代)

 

 

II. 엄벌주의 (嚴罰主義)와 교정주의(矯正主義)의 갈등

 

1. 형벌의 목적

엄벌주의란 범죄에 대하여 관용 없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사상으로, 응보주의(應報主義)라고도 합니다.
엄벌주의는 일반의 법감정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으로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현대의 형법체계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교정과 교화를 그 중심에 둔 '과학시대'에 접어들어 '형벌은 범죄인의 반사회성을 교화·개선할 수 있는 내용과 목적을 가져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교정주의(矯正主義)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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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주의에서는 형벌의 목적 자체를 '범죄자의 재사회화를 통한 사회의 복귀'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범죄자의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정주의는 범죄의 책임이 가해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성장 환경, 부모와 선생님과 같은 법률적 보호자, 그리고 범죄자를 그러한 환경에 방치한 사회에도 그 책임이 있으므로 연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과도한 처벌이나 법 집행으로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정기관'에서 '보호처분' 과정을 거쳐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범죄의 처벌보다 범죄자를 교정하여 재범률을 낮추는 것에 더 큰 목적을 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엄벌주의를 택하는 나라보다 교정주의를 택하는 나라가 범죄율이 낮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범죄의 발생은 피할 수가 없는 현실임을 인정하고, 엄벌주의로 범죄율을 억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 재범률을 낮추는 것에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2. 일반의 법 감정과의 갈등

그러나 이러한 교정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형벌의 집행은 범죄행위의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납득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국민은 범죄 피해자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보다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게 됩니다.
교정이 아닌 사회와의 영구적인 격리를 바라거나, 범죄자가 피해를 입힌 것에 상응하거나 그 이상의 징벌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교정을 통해 사회 전체의 범죄율을 낮추려는 국가의 목적과 피해를 그대로 되갚는 응보(應報)의 처벌을 요구하는 피해자와 일반 시민의 법 상식 간의 간극.

이것이 바로 엄벌주의와 교정주의의 갈등이며, 법치주의와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민정서법의 갈등이라 하겠습니다.

 

 

III. 사적제재(私的制裁), 사적구제(私的救濟)와 자경단(Vigilante, 自警團)

1. 사적제재私的制裁 / 사적구제•私的救濟

'사적제재(私的制裁)' 또는 '사적구제(私的救濟)'란 법원이나 경찰 등 국가권력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사력(私力)으로 자기의 이익이나 권리를 방어 또는 회복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다른 말로 '자력구제'라고도 하는데, 이는 현대의 형법 체계에 의한 형벌의 처분이나 집행에 만족하지 못하는 범죄의 피해자나 일반인이 사적인 동기와 수단으로 가해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죄형법정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법치국가에서는 실질적으로 '범죄행위'와 다름이 없습니다.
따라서 국가권력은 사적제재(사적구제)에 대하여 상당히 엄격하게 제재를 하는 편입니다. 사적제재(사적구제) 행위는 단순히 범죄행위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법 체계를 위협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를 방해한다던가 선거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르는 행위, 사법체계를 위협하는 위증이나 증거조작과 같은 범죄 행위.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경제범죄에 엄격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하겠습니다.

 

2. 자경단(Vigilante, 自警團)의 우상화

디즈니+ 드라마 '비질란테(Vigilante)' 포스터
디즈니+ 드라마 '비질란테(Vigilante)' 포스터

죄형법정주의에 입각한 형법과 일반 법 상식 사이의 괴리로 인한 갈등에서 발생한 것이 자경단(自警團)에 대한 우상화가 되겠습니다.

일반이 생각하는 '자경단'은 폭동이나 전쟁과 같이 국가권력이 정상적인 치안 유지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 재난·재해 상황 하에 국가권력을 보조하여 치안 관리를 목적으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하는 결사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들은 '경찰의 치안 유지 역할을 보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민간 봉사 조직'정도로 이해가 되며 가까운 예로 시민경찰, 해병전우회, 자율방범대 등이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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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원래의 자경단, 즉 Vigilante [vɪdʒɪˈlænti, 비질랜티]는 이러한 현대의 인식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깨어있는'이라는 뜻의 라틴어 Vigilis에서 유래하여 '깨어있는 자, 경계하는 자, 감시하는 자'라는 뜻으로 파생된 단어입니다.
실제로는 마블이나 DC코믹스의 히어로가 하는 역할과 같다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겠습니다.

즉, '자경단'은 '법에 의거하지 않고 스스로의 정의와 기준으로 사적 제재를 가하는 사람'으로 Punisher, Daredevil, Batman, Arrow 등 대부분의 슈퍼 히어로들이 여기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드라마, 영화, 만화, 소설 등은 복수와 사적제재(사적구제)라는 범죄행위를 주제로 극을 전개하고 궁극적으로 사적제재(사적구제)를 행한 '자경단'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관객에게는 그들의 '복수'를 통한 대리만족의 쾌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 법 상식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법률의 적용, 온갖 법 조문의 보호 아래 처벌받지 않는 범죄자, 권력과 비리를 이용하여 법망을 빠져나가는 부패한 권력자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현실 세계에서는 응징하지 못하는 악인(惡人)들에 대해 불법·탈법·위법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처벌하는 자경단이 보여주는 통쾌함으로 비록 그들이 법치국가의 체계를 벗어나는 위협적인 존재임을 알지만 그들을 응원하고 또 선망하는 것입니다.

 

 

IV. 안두희 살해사건

1. 대표적 사적제재의 사례 '안두희 살해사건'

김구 살해범 안두희와 정의봉의 Vigilante 박기서
김구 살해범 안두희와 정의봉의 박기서 (사진 : 동아일보)

사적제재 또는 자경단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비단 허구의 세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적제재의 사례라 할 수 있는 것은 백범 김구 살해범 '안두희'를 살해한 박기서 (1948.12.09~2025.07.10, 향년 77세)씨의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사건이 전말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먼저, 경기도 부천의 평범한 시내버스 기사였던 박기서 씨는 1996년 10월, 회사에 휴가를 신청합니다.
그리고 미리 시장에서 구입한 홍두깨 형태의 40cm 크기의 나무 몽둥이를 들고 안두희의 집을 찾아갑니다.
준비했던 장난감 권총으로 안두희의 아내를 위협한 후 당시 80세의 중풍 환자였던 안두희를 묶어놓고, 준비한 몽둥이로 안두희가 사망할 때까지 구타하는 잔혹한 범죄를 저지릅니다.
박기서 씨는 안두희의 사망을 확인한 후 성당에 들러 고해성사를 한 후 경찰에 자수를 하게 됩니다.

이 사건이 언론에 알려진 후 당시 사회 각계 인사들은 박 씨를 '의사(義士)'라고 치켜세웠습니다.
또한 그들은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 처단 박기서 의사 석방 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9,200명이 서명한 탄원서를 법원에 지출하는 구명운동도 펼칩니다.
더불어 전국 각지의 시민들은 그의 자택으로 격려금과 위로 편지 등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박기서 씨의 범죄는 모든 정황을 따져보면 잔혹하기 그지없는 계획범죄입니다.
먼저 위협용 장난감 권총과 살해도구인 나무 방망이를 미리 준비하였습니다. 게다가 나무 방망이에는 본인의 살해 행위를 정당화하는 '정의봉'이라는 문구를 써넣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항거 불능의 80세 노인을 결박한 후 숨이 찰 때면 냉장고에서 찬 물을 꺼내 마셔가며 죽을 때까지 몽둥이로 사정없이 구타하였습니다.
이렇듯 계획적이고 잔혹한 범죄행위를 하였지만 박기서 씨는 전 국민적 지지에 힘입어 최종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고, 그마저도 1년 만인 1998년 3월 사면으로 풀려났습니다.
3년 확정 판결 시 재판부는 "박 씨의 범행 동기는 주관적으로는 정당성을 가지나 법질서 전체 관점에서는 용인될 정당성을 가진다고 볼 수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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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서 씨의 행위는 현행법률이 용인하지 않는 위반한 분명한 사적제재였으며, 법질서 전체를 혼란스럽게하는 범죄행위였으나 당시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그의 행동과 이후의 처벌에 관해 별다른 뒷말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이는 민족적 영웅인 김구 선생을 살해하고도 응당의 처벌을 받지 않고 호의호식한 범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법률이 사적제재를 금지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가 바로 주관적 판단과 인간행위의 비합리성인데, 박기서 씨의 안두희 단죄는 이를 충족하는 행위였다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박기서 씨는 사면 후에도 온라인과 방송에서 친일발언을 일삼던 김완섭의 두드려패서 불구속 입건된 적도 있고, 박정희 정권 당시 의문사를 당한 장준하 선생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던 김용환을 찾아가 뺨을 때린 적도 있다고 합니다.

2025년 7월 10일, 박기서 씨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 국민정서법

앞서 '과학시대'의 교정주의 형법 이념에  따라 가해자의 의도 등을 고려한 차별적 법적용, 교정기관의 보호 속에서 재사회화를 위한 지도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은 범죄자라는 판단이 적용되어 낮은 형량이 선고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존엄성에 경중(輕重)이 없다는 점, '의로운 일을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반성이 없었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이 또한  법 체계를 흔드는 판결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교정주의에 반대하는 국민정서에는 엄벌주의 외에도 가해자의 인권에는 적극적이면서 정작 보호되어야 할 피해자의 인권에 대해 무관심해 보이는 국가권력에 대한 반감이 크다 하겠습니다.
피해자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고 보상할 수 있는 법적 지원책이 마련된 후에야 가해자를 용서하고 마음으로나마 교화를 바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피해자에게는 조롱과 공격을 반복하면서도 판사에게 반성문 몇 장을 제출하면 '판사가 용서'하는 현실의 법 체계 하에서는 사적제재와 자경단에 대한 열광과 동경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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