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투(Duel)란 무엇인가? (결투의 어원과 역사, 그리고 푸시킨)

중세와 근대 서부시대를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장면으로 결투를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결투에 대하여 '어떤 사안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되는 의견을 가진 두 사람의 공식적이면서도 명예로운 의식'이며, '쌍방이 치명적인 결과를 인지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목숨을 건 단판 승부' 정도의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결투의 어원과 역사, 그리고 결투의 의미 등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결투란 무엇인가? (결투의 어원과 역사, 그리고 푸시킨)

I. 결투(Duel)란 무엇인가?

Duelling with sabres at the time of the French First Empire, 1812. Liebig card, early 20th century.-min
Duelling with sabres at the time of the French First Empire, 1812. Liebig card, early 20th century.

우리는 일반적으로 '결투'라는 것을 생각할 때

  1. 근대 이전의 시기에
  2. 법률에 의한 판정을 내리기 어렵거나 애매한 사안에 대하여
  3. 개인적인 요청과 합의 또는 권력자의 명령에 의하여
  4. 실리보다는 명예를 위하여
  5. 양자 간의 공정하고 평등한 합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6. 개인적, 사회적, 정치적 분쟁 해결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결투라는 것은 따지고보면 대표적인 사적구제의 한 방법이기도 하고, 종교적으로도 야만적인 풍습으로 보아 금지해 왔던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금지하는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 결투에 참가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협조자까지도 파문에 처할 정도로 큰 죄로 규정하였다고 하니 어찌 생각하면 근대의 서부시대까지 결투의 전통이 이어진 것 자체가 참으로 신기한 일이기는 합니다.

 

 

II. 결투의 정의와 어원

결투의 사전적 의미부터 정리해 보겠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결투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1. 승패를 결정하기 위하여 벌이는 싸움
  2. 원한이나 모욕 따위를 풀기 위하여 일정한 조건과 형식 아래 벌이는 싸움

두산 백과사전에서는 '증오・불화 때문에, 또는 영광・명예회복 등을 위하여, 상호 간의 동의로 미리 정한 규칙에 따라서 가지는 투쟁'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한자로 결투는 '결단할 결決' + '싸울 투鬪'로 '원한 따위가 있을 때 무기로써 싸워 승부를 결정하는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여기서 '결 決'자는 결단하다, (승부를) 가리다, 결정하다, 분별하다, 판단하다의 뜻으로 '물 수水'자변에 '터노을 쾌夬'자가 결합한 모양입니다.
물길을 터놓는다는 뜻으로 치수를 위해 물길을 터놓는 결정을 하는 것으로,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결단이 숨어있는 의미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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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鬪'자는 (두 병사가 손에 병기를 들고) 싸우다, 싸우게 하다, 승패를 겨루다라는 뜻입니다.
鬪자는 鬥 (싸울 투) 자와 尌 (세울 주) 자가 결합한 것으로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선 가운데 무기를 세워 들고 싸운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중국어에서는 '决斗 주에 도우'라고 읽고, '결투를 결정하다'로 번역하게 됩니다.

 

영어로는 Duel이라고 쓰고, 미국식으로 [듀~얼, ˈduːəl], 영국식으로 [듈~, ˈdjuːəl]과 같이 발음합니다.

어원적으로는 '전쟁'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duellum 듀엘룸'에서 유래하였습니다.
duellum이 두 사람 사이의 개인적인 싸움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는 'duellus 듀엘루스'로 변형되고, 1600년대 초기에 'duel'이라는 영어단어로 정착하였다고 합니다.

 

 

III. 결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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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uke of Wellington & The Earl of Winchilsea in a Duel at Battersea Fields (출처: getty images)in-a-duel-at-battersea-fields-getty-images-min

결투는 다양한 분쟁과 갈등에 대한 해결 방법으로서 역사시대 이전부터 행하여져 온 것입니다.
알려진 바로는 최초의 결투에 관한 기록은 '기원전 3000년 바빌로니아의 두 왕자가 왕좌를 놓고 싸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두 사람의 분쟁해결 방안'으로서의 결투는 중세 시대에 와서야 어느 정도 그 틀이 잡힌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서구 사회에서는 '증인이 없는 상황에서 논쟁 중인 두 당사자가 한 번의 전투를 통해 승자가 옳다고 결정'하는 사법적 결투와 바이킹 시대의 관습이 결투의 기원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중세 시대에 이르러서는 종종 기사들이 결투를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였습니다. 이에 결투 행위 자체가 공식화되기도 하였고, 결투 행위를 규정하기 위해 '기사도 강령'이 제정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야만적 관습으로부터 유래한 결투는 서구 각 나라에서 전통을 이루며 시행되다가, 1215년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사법적 결투가 폐지되면서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도 신성 로마 제국에서 15세기까지 지속되었고,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는 결투가 '존경할 만한 신사의 지위를 확립하고 해결하기 위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합니다.

근대 초기까지 결투는 상류층 사이에서 더욱 널리 퍼졌으며, 개인적 또는 정치적 분쟁 해결 방식으로 빈번하게 사용되었는데, 이 시기에는 펜싱 대결이 결투의 관행으로 발전하면서 표준화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이 시기 결투는 유럽 전역에서 귀족의 특권으로 간주되었고, 결투를 막으려는 노력은 실패를 거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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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결투문화는 18세기와 19세기에 이르면서 산업화에 따른 계몽주의의 확산, 폭력과 자기중심적인 명예 문화라는 비난, 경찰력의 강화 등으로 비로소 쇠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결투의 관습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전 세계적으로 사실상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결투는 불법행위로 규정되고 있지만, 현대에서도 세계 전역에서 몇 번의 결투사례가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1949년 비시정부의 공무원이자 극우 정치인인 '장-루이 틱시에-비냥쿠르 Jean-Louis Tixier-Vignancour'는 학교 선생님인 '로저 노르만 Roger Nordmann'과 결투를 했고, 1967년에는 사회당 부대표이자 마르세유 시장인 '가스통 데페레 Gaston Defferre'가 프랑스 의회에서 '르네 리비에르 Rene Ribiere'를 모욕하고 펜싱 결투를 벌였습니다.

 

1971년에는 우루과이의 정치인 '다닐로 세나 Danilo Sena'와 '엔리케 에로 Enrique Erro' 간에 권총 결투가 있었지만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고 끝난 적이 있습니다.

 

 

IV. 결투 ・ 決鬪 ・ Duel

결투는 폭력과 명예의 본질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합니다.

개인이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수단으로써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것 자체가 '명예의 가치가 생명보다 우월하다'라는 증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투는 인간 생명의 가치와 사회에서의 폭력의 역할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합니다.

 

결투는 개인의 명예가 가지는 가치가 사회적 이익과 충돌하는 경우에 대한 가치판단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결투는 정의와 법치에 대하여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영화 Pushkin. The Last Duel 중에서-min
영화 Pushkin. The Last Duel 중에서

 

1837년 2월 8일 오후 4시 3분경, 38살의 젊은 러시아인 푸시킨은 사랑하는 아내 '곤차로바'에게 추근대는 러시아 망명 프랑스 장교 '조르주 단테스'와 사랑과 명예를 건 결투를 하였습니다.
결투 끝에 복부에 총상을 입고 심하게 앓은 후 이틀만인 2월 10일, 러시아의 위대한 대문호 '알렉산드로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Alexander Sergeyevich Pushkin'은 '잘 있어! 친구들'이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아내에게 추근대는 남자를 비난한 푸시킨에게 결투를 신청한 자는 푸시킨의 아내를 희롱하고 조롱하던 조르주 단테스였고, 푸시킨은 명예로웠고 정의로웠습니다.

결투의 승패는 정의나 명예가 아니라 칼솜씨와 사격 실력으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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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는 그 어떤 분쟁해결 방법보다 정의롭고 명예로운 선택이지만, 그 어떤 방법보다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며 몰가치한 방법입니다.
따라서 그 야만적이고 몰가치한 수단으로 인한 결과에 의해 정의롭고 명예로운 선택이 오염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합법적인 가치판단의 결과가 일반의 정의에 부합하지 못할 때는 결투를 통한 정의와 명예 회복이 간절해지기도 한 것입니다.

 

푸시킨의 이야기가 곁들여진 결투와 관련한 볼만한 칼럼을 링크합니다.

SBS 김형민 PD가 쓴 '시사IN' 칼럼입니다.

 

함께 볼만한 글로 '사적구제'에 관한 글을 링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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