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와 환관의 역사, 내시나 환관이 되는 방법, 그리고 내시의 외모 변화 등 내시와 환관에 관한 이모저모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I. 내시(內侍)와 환관(宦官)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단역으로, 조조연으로, 스쳐 지나가는 배역으로 익숙했던 내시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명나라 영락제가 만들었다는 동창의 태감이 환관이며, 가진 바 힘과 세력을 이용해 규화보전과 같은 절세 무공을 익혀 무림 일통을 꾀하고 천하를 정복하기 위해 구대문파와 오대세가를 핍박하는 내용의 무협지, 영화, 드라마를 보면서 '환관이란 존재에 대하여 우리가 참 많은 것을 모르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무릇 힘이란 욕망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욕망이란 노력하면 가질 수 있는 것이 닿을 듯 말듯한 범위 안에 있을 때 가장 강렬한 것이니, 환관이 가진 힘과 욕망의 크기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시(內侍)와 환관(宦官)이 같은 신분의 다른 명칭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조금만 찾아보면 명확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내시는 권력자의 옆에서 시중을 드는 거세된 남성 관리로서 주로 담당하던 업무는 음식물 감독, 왕명 전달, 의전, 수위, 청소 등이고,
- 환관은 궁의 여성 숙소에 살면서 경호나 잡일을 담당하는 임무를 가진 거세된 남성을 말합니다.
이렇듯 내시와 환관은 그 맡은 바 업무가 상이하여 직책도 차이가 나는 신분이었는데 점차 환관이 내시부를 차지하게 되면서 나중에는 구분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내시와 환관의 차이, 그리고 각각의 역사 등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II. 내시와 환관의 차이

기록에 전해지는 우리나라의 내시와 환관의 차이는 시대별로 명확히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고려 전기에만 해도 내시는 가문과 학식, 재능과 용모를 갖춘 보좌관 성격의 엘리트 집단이고,
환관은 궁중의 잡역을 담당하는 거세된 남자 궁인으로서 뚜렷이 구분하여 관리되었습니다.
그 후 고려 후기 공민왕 5년에 새로 설치된 환관의 관청이 '내시부'로 불리면서 내시부 소속인 환관과 내시가 혼동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조선시대부터는 환관과 내시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다가 1894년 고종 31년 환관(내시) 제도가 폐지되었습니다.
III. 내시와 환관의 역사
내시와 환관이 중국과 한반도와 같은 동양의 왕국에서만 존재하던 신분은 아닙니다.
내시와 환관은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지방, 페르시아에도 기록되어 있을 만큼 국제적이고 역사적인 신분입니다.
역사적으로 환관에 대한 기록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키케로가 '역사의 아버지'라 부른 BC 6세기경의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사람들은 환관은 믿을 수 있는 자들이라 해서 이용하였다'라고 하였으며,
- 그리스인들은 환관을 만들어 소아시아의 오래된 도시 에페소스(Ephesus, 지금의 터키 서쪽 끝에 위치한 해안도시였습니다.)와 리디아(Lydia,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6세기까지 소아시아 서부 지방에서 번성하였던 왕국)의 수도 사르디스(Sardis, 에페소스와 같이 터키 이즈미르주 인근)에서 페르시아 사람들에게 많은 돈을 받고 팔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서(西) 아시아에서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에서 성행하였고,
- 동로마제국에서도 그리스, 로마로부터 환관 제도가 전해져 성행하였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7세 시대의 근위대장 포티누스, 테오도시우스 1세 이후 동로마 제국을 세운 아르카디우스 황제 때의 에우트로피우스, 테오도시우스 2세 때의 크리사피우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를 섬기며 이탈리아에 진격해서 동고트 왕국을 멸망시킨 나르세스 등이 환관으로서 권세를 떨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일부다처를 인정한 이슬람 나라들에서는 후궁을 관리하기 위해 많은 환관을 필요로 하였으며,
- 오스만튀르크 제국에서는 아프리카의 흑인이 이에 충당되었으며,
- 인도의 무굴제국에도 많은 환관이 있었고,
- 16∼17세기 페르시아의 사파비 왕조에서는 환관의 세력이 강하였다고 한다.
- 그리스도교가 유포된 후의 유럽에서는 환관이 점차 줄어들었는데, 이탈리아에서는 가톨릭 합창대에서 노래를 시키기 위해 아이들을 거세하였으나, 교황 레오 13세의 금령에 따라 소멸되었다고 합니다.
- 아시아의 경우 중국에서의 내시(환관)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 환관은 춘추시대에 이미 존재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보다 더 이른 은주(殷周)시대에도 환관에 관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환관은 중국 왕조의 탄생과 더불어 존재해왔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상나라의 갑골문자에는 기원전 1300년경 무정왕 때 포로로 잡혀온 서쪽의 야만인 강인이란 자를 환관으로 삼아도 되는가 점을 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니 그 이전부터 존재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이러한 중국의 환관 제도는 동양에서 한반도와 안남 등의 주변 국가에도 영향을 끼쳤으나, 일본에는 파급되지 않았습니다.
- 일본에 환관이 없었던 것은 일본의 왕인 쇼군이 거주하는 성城의 특이한 구조에 그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 일본의 성(城)은 쇼군이 정무를 보는 공간과 개인 생활을 하는 공간이 철저하게 분리되어있는데 정무를 보는 공간에는 여자들이 드나들 수 없었으며 이곳에서는 승려와 하급무사가 환관의 역할, 즉 왕과 왕의 여자들을 지키는 업무를 담당했다고 합니다. 반면 쇼군이 개인 생활을 하는 오오쿠에는 쇼군의 여자들이 생활을 했으며 이들은 엄격하게 통제된 삶을 살았는데 남자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는 오오쿠에서는 승려와 오토시요리라고 하는 상급 여성 관리가 환관의 역할을 대신했기 때문입니다.
IV. 우리나라 내시(內侍)의 역사

고대 중국의 왕실에서부터 시작된 내시(환관) 제도는, 한반도의 경우 신라시대부터 존재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후 고려 초기에는 궁중의 하급관리로서 힘없는 환관이 존재하였으나, 원의 침입을 받은 25대 충렬왕 때부터는 원과의 외교를 주로 환관이 맡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원의 세력을 등에 업은 환관의 위세는 점차 커졌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궐내에 수백 명의 궁녀들이 머무르고 있었는데, 이들 궁녀를 보호하기 위하여 내시의 필요성이 더 커졌습니다. 따라서 내시들의 권세가 더욱 커져, 지금의 장관급에 속하는 직급(판내시부사, 드라마에서 상선이라 불리는 직급입니다.)에서부터 사령에 이르기까지의 그 수가 수백 명에 달했습니다.
그들은 주로 음식물 감독, 왕명 전달, 의전, 수위, 청소 등 궐내의 온갖 살림과 잡무를 맡아 수행하였습니다.
특히 내시들은 임금의 호명을 받은 고위인사 만이 출입이 가능했던 왕과 왕비가 머무르는 침전 공간에도 언제나 통제 없이 출입하며 임금의 지근거리에 접근할 수 있었고, 이러한 특권 때문에 비록 직급은 낮은 관직이었으나 정무에도 깊이 관여할 수 있었습니다.
V. 내시(內侍)가 되는 방법
내시는 양반과 천민의 중간 신분인 양민 신분의 지원자 중에서 선발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내시로 선발되고 나면 '거세를 하고 내시가 될 것이냐'는 질문을 세 번 받게 되는데 그때마다 자신 있게 "내시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거세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만약 일말의 망설임이라도 보인다면 거세를 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거세 방식은 크게 고환과 음경을 함께 절제하는 방식과 고환만 잘라내는 두 가지의 방식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후자의 방식으로 거세를 하였습니다.
중국의 경우 전자의 방식으로 거세를 진행하였는데 고통이 극심하고 수술 중 사망하는 경우도 월등히 많았다고 합니다.
거세를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면 자신의 이름을 붙은 항아리에 거세한 고환을 소금에 절인 후 담고 그 항아리를 갖고 궁에 입궐하게 됩니다.
이 항아리는 내시감이 보관하고 있다가 그 내시가 죽을 경우 해당 내시의 항아리에서 남근을 꺼내 원래 있던 자리에 봉합한 후 온전한 신체를 갖추어 장례를 치르게 되어 있었습니다.
VI. 내시와 환관의 외모 변화 설명

조선시대에 평균 수명이 가장 긴 신분은 왕족, 양반도 아닌 바로 내시(환관)이었다고 합니다.
내시 777명의 가계도가 기록되어 있는 조선시대 내시 족보인 '양세계보'를 바탕으로 한 ‘내시 장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선시대 내시들이 양반 남성들보다 평균 14~19년 더 오래 살았으며, 100세 이상 장수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 연구에서는 '거세'로 인해 남성호르몬 분비 억제'를 내시들의 장수 비결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내시가 되면 남성호르몬의 분비가 억제되면서 외모에서도 큰 변화를 보여줍니다.
- 피부 : 피하 지방이 발달하여 여성처럼 곱고 윤기가 흐르는 부드러운 살결로 변한다고 합니다.
- 수염 : 수염이 나기 전의 어린 나이에 거세한 경우는 수염이 아예 나지 않고, 수염이 난 후에 거세를 한 경우 3개월 이내에 수염이 다 빠져버린다고 합니다.
- 목소리 : 소년기에 거세한 경우 어린 소녀의 갸날픈 음성처럼 변하게되고, 사춘기 이후에 거세를 한 경우 찌를 듯이 가늘고 높은 톤의, 마치 목이 많이 쉰 사람이 억지로 소리를 낼 때 나오는 음성과 비슷해진다고 합니다.
- 비만 : 남성호르몬이 생성되지 않아 그 원료가 되는 지방이나 콜레스테롤이 축적되며, 성생활로 인한 칼로리 소모가 없는 탓에 비만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 남성 갱년기 장애, 노화 촉진 : 성불구자라는 열등감과 수치심을 갖고 살아야했던 이유에서인지 도박, 아편, 음주를 즐기게 되고, 그로 인해 젊을 때와는 달리 나이가 들면 살이 빠지고 급격히 주름이 생겨 40세만 되어도 60세가 된 노인의 모습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VII. 거세당한 본능의 삐뚤어진 분출
진나라(BC 221~BC 206) 때의 조고는 임금의 권세까지 뛰어넘은 환관이었습니다.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진 조고는 최초로 중국 대륙을 통일한 시(始) 황제가 죽자 조칙(詔勅)을 거짓으로 꾸며 황제의 맏아들 부소를 자결하게 만들고 우둔한 막내아들 호해를 허수아비 황제로 세워 승상의 자리에 올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일곱 명의 임금을 모시면서 직언을 서슴지 않은 충성스러운 환관 김처선(金處善)과 같은 환관도 있었지만, 김처선과 같은 연산조의 환관이었지만 연산군을 주색에 빠뜨리고 왕명 출납을 담당하며 막강한 권세를 휘두른 희대의 간신 김자원 같은 자(者)도 있었습니다. 또한 후한 말 어린 나이에 권좌에 오른 영제(靈帝)를 주색에 빠지게 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부와 권력을 독점하였던 십상시와 같이 온갖 만행을 저지른 환관도 많았습니다.
야만이 지배하던 시대에 생존을 위한 방편이었을 수도 있고, 권력의 중심으로 뛰어든 욕망의 발화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전쟁포로에게 강요된 삶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어떠한 형식이었든 거세된 신체만큼 자유와 인권과 욕망마저 거세되어 삐뚤어진 형태로 발산된 경우를 유독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신분인 것 같습니다.
찾아볼수록 더 많이 알아보고 싶은 신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