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와 존엄사의 어원, 개념, 역사 – 연명의료 결정법과 의사조력 존엄사의 허용. 죽을 권리인가 사회적 타살인가

2022년 8월 29일 국회에서는 '의사조력 존엄사 Euthanasia'에 관한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의사조력 자살, 말기 환자의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는 '죽을 권리'라는 주장과 '사회적 타살'이라는 반론이 치열했다고 합니다.

안락사와 존엄사에 관한 논란은 꽤 오랜 역사를 가졌고 여전히 첨예한 입장이 부딪히는 사안입니다.

법률적, 윤리적, 종교적, 철학적으로 명확한 입장과 신념이 대립하는 문제에 대해 개념부터 명확하게 정리해보자는 생각에 찾아보았습니다.

오늘은 안락사와 존엄사의 개념과 차이, 그리고 안락사와 존엄사의 역사에 대하여 정리해 보겠습니다.

 

 

안락사와 존엄사
사진출처 : Economic&Political Weekly

 

I. 안락사와 존엄사의 개념과 어원

1. 안락사 Euthanasia

안락사의 사전적 의미는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불치의 환자에 대하여, 본인 또는 가족의 요구에 따라 고통이 적은 방법으로 생명을 단축하는 행위'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어에서 안락사를 뜻하는 단어로는 Euthanasia, Mercy Killing, Assisted Suicide 등으로 표현합니다.

여기서 Euthanasia [ˌjuːθəˈneɪʒə, 유써네이시아]는 좋은(good, well)이란 뜻의 그리스어 어원의 접사 eu와 thanatos(타나토스, death, 죽음)를 어원으로 하는 thanasia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good death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euthanatos가 현재의 euthanasia가 된 것입니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많이 이야기하는 well-dying과 같은 뜻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말과 한자의 '안락사'라는 표현은 영어의 Euthanasia를 번역한 것으로 한자로는 '편안 안安 + 즐길 락樂 + 죽을 사死'로 사용합니다.

한글과 한자는 편안한 죽음이라는 현상에 대한 표현의 성격이 강하지만 영어는 구체적 행위에 대한 설명이 강조된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존엄사와 안락사 Euthanasia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출처 : 한겨레)

 

2. 존엄사

국어사전에 존엄사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습니다.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 또는 그런 견해. 의사는 환자의 동의 없이 원칙적으로 치료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으로, 소극적 안락사라고도 합니다.

추천글 ▶︎  뭔가 모자란 사람을 일컫는 말들 바보, 멍청이, 반푼이, 병신, 등신, 쪼다, 얼간이, 머저리

존엄사라는 말은 1975년 식물인간이 된 카렌(당시 21세)의 가족들이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청하자 뉴저지주 대법원이 이를 허용한 존엄사에 관한 첫 판결에서 생겨난 말이라고 합니다.

한자로는 '높을 존尊 + 엄할 엄嚴 + 死'를 사용하지만 영어로는 따로 설명하는 단어가 없이 안락사를 뜻하는 Euthanasia를 함께 사용합니다.

 

 

II. 안락사와 존엄사의 차이

존엄사와 안락사의 차이 Euthanasia
안락사와 존엄사 차이 (출처 : YTN)

안락사는 적극적으로 약물을 투여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소극적으로 물·산소·영양분의 공급을 중단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반면에 존엄사는 필요 없는 치료를 거두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안락사는 법률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범죄행위이며 안락사 자체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지만, 존엄사는 현재 일부 조건에 따라 법률적으로 인정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 연명의료 결정법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진입하였고,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 경우라면 해당 환자에 대한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2016년 2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단계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 결정법')이 제정되었고 이 법에 따라 '연명의료 결정제도'가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고 있다고 의사가 판단한 경우라면 환자의 의향을 존중하여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이미 2018년에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2022년 6월,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말기 환자들을 위해 '조력 존엄사'를 도입하는 내용의 '연명의료 결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였습니다.

 

 

2. 의사 조력 존엄사

'조력 존엄사'란 말기 환자가 본인의 의지로 담당 의사의 도움을 통해 스스로 삶을 종결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환자의 요청에 의해 의사가 약물을 처방하고, 환자가 스스로 투여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이는 '임종 과정이 아닌 상태'에서도 존엄사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 연명치료 중단을 넘어 약물 투여를 통해 죽음에 이르도록 한다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안락사의 개념이 반영된 방안입니다.

추천글 ▶︎  천벌이란 무엇인가? 천벌의 모든 것 (정의, 종교와 천벌, 사례 등)

법원의 존엄사 허용기준표 (안락사와 존엄사 Euthanasia)
법원의 존엄사 허용기준 (출처 : 중앙일보, 2009년)

2022년 6월 안규백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일종의 '소극적 조력 존엄사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공호흡기를 떼거나 심폐소생술을 거부하는 등 연명의료 중단의 대상을 임종기 환자로 제한하는 현행법을 개정하고, 가망이 없는 말기 환자에게도 선택권을 제공하자는 취지의 법안입니다. 다만, 의사가 환자에게 직접 약물을 투여하는 '적극적 안락사'의 개념은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오리건 주, 워싱턴 주 등 미국의 10개 주에서는 이미 의사조력 자살이 합법화되어 시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말고도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는 국가는 상당히 많습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헝가리, 노르웨이, 영국, 인도, 태국, 일본 등이 생명연장 수단의 제거를 용인하는 정도의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유럽의 국가들 중에는 안락사까지 허용하는 경우도 꽤 여러 곳이 있습니다.

2002년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조력자살과 적극적 안락사를 모두 합법화하였고 이후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뉴질랜드, 콜롬비아 등이 두 방식 모두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스위스, 독일, 호주의 빅토리아 주와 미국의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뉴저지 등 일부 주에서도 조력자살만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III. 안락사와 존엄사의 역사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 역사에서 안락사에 대한 기록은 고대 그리스 때부터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은 '죽음을 의도적으로 앞당긴다'는 의미에서 안락사를 지지하였고, 히포크라테스는 단호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이후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에서는 당연히 안락사는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르네상스 시대가 되면서 다시 논의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옛날 존엄사 그림
사진출처 매일경제, Pixabay

중세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신의 피조물인 인간의 자살과 안락사를 모두 살인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Self-murder, 즉 자기 살해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자살 Suicide'이란 단어는 17세기가 되어서야 등장한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에서도 죽음의 고통을 덜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같았던 것인지 1515년 출간된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는 중환자가 타인에게 자신의 죽음을 부탁할 수 있는 섬나라 왕국이 등장합니다.

 

이때까지는 안락사란 고통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라는 개념이 더 강하였으며 요즘 논의되고 있듯 제삼자가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죽음을 도와주는 행위라는 개념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추천글 ▶︎  낭만(浪漫)과 낭만주의(Romanticism)의 어원과 정의 그리고 차이

현대의 안락사 개념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17세기 초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으로, 그는 '안락사 의학 (Euthanasia Medica)'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Euthanasia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안락사를 영혼이 죽음을 준비하는 것을 말하는 '내적 안락사'와 삶을 단축시키더라도 마지막 삶을 좀 더 편안하고 고통 없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외적 안락사'로 구분하여 설명하였습니다.

 

이외에도 고대 인도에서는 치료할 수 없는 환자를 갠지스강에 익사시키고,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죽음을 불러오는 향을 쓰는 등 현재 우리가 보았을 때 안락사로 해석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안락사와 존엄사에 대한 인식은 지역과 국가가 예전부터 공유해온 윤리적, 종교적, 정치적 역사에 지배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사무라이들의 할복자살이 명예로운 죽음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다른 사무라이가 목숨을 끊어주는 것이 당연했었기 때문에 안락사에 대한 인식이 세계의 다른 지역과는 차이가 크다고 합니다.

riss를 기웃거리다 해당 문제에 대하여 잘 정리된 논문을 찾아 소개합니다.

한국교원대학교 철학교육전공 김미혜 석사의 2019년 학위논문으로 '안락사와 좋은 죽음의 문제'라는 주제의 논문입니다.

논문은 전체 126쪽으로 안락사의 개념과 종류, 그리고 안락사와 관련한 윤리적 문제 등 기존에 논의되는 내용들을 정리하고 선택하는 죽음, 맞이하는 죽음이라는 취지의 웰다잉 또는 존엄사에 관한 설명을 한 후, 좋은 죽음과 죽음교육에 관한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마무리합니다.

해당 논문은 Creative Commons 저작물로 배포가 자유로우니 아래에 링크를 첨부합니다.

 

안락사와 좋은 죽음의 문제 (2019년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철학교육전공 김미혜 석사 학위논문)

 

 

※ 같이 보면 좋은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