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과 여론 사이의 이상적인 관계는 어떤 것인가?
2003년 휴머니스트에서 출간된 책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에 '여론이 정권을 이끌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수록된 글이 있습니다.
'사회 대중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하는 여론이 정치권력의 향방을 이끌어 다수 민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기안하고 집행하도록 강제 또는 유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답변입니다.
오늘은 이 질답을 인용하고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 질문은 지금부터 25년 전인 1997년 바칼로레아 문제로 출제되었던 것입니다.
이 시기는 아직 스마트폰도 보급되기 전이었고 페이스북은 물론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즉 SNS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인지라 개인의 정치적 의견은 대자보나 오프라인 집회로 표현해야 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만큼 총의가 집결되기 어렵기도 하였지만 또한 의지를 가진 집단이 조작하거나 왜곡하기도 힘든 시기였습니다.
현재와는 큰 차이가 있는 환경이었으므로 정치권력이 여론에 반응하는 정도도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이를 감안하고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럼 바칼로레아의 질답으로 수록된 글을 요약하여 정리해 보겠습니다.

I. 여론이 정권을 이끌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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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들은 종종 자신이 결정한 사항을 여론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불평한다. 그렇다면 정치권력과 여론 사이의 이상적 관계는 어떤 것일까? |
II. 여론의 표류
철학 사적으로 볼 때 플라톤에서 하이데거의 이르기까지 '여론 opinion'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여론은 사유의 부재를 뜻하는 것으로, 엄격하지도 않고 유동적이며 난잡한 생각으로 간주되었다. 또한 정치학적 관점에서 볼 때 각 개인의 상황에 근거해 만들어진 견해일 뿐이어서 수많은 개인적 이해관계들이 부딪히며 형성된 이질적 의견들에 총합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치권력은 집단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데, 이때 집단의 이익이란 단순히 개인들의 이익을 합쳐 놓은 것이 아니다. 따라서 중대한 모순과 갈등이 생기게 된다.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여러 사회 집단들은 각기 다른 여론을 제시할 수밖에 없고, 권력이 올바로 행사되려면 정치권력은 이 집단들로부터 독립해 있어야만 한다. 여기서 다양한 여론에 대한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쉽지 않은 과제가 떠오른다.
문제는 정치권력이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다양한 여론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지배계급의 이익만을 대변하기 쉽다는 것이다.
III. 정치권력의 역할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권력은 다수가 의견을 존중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은 선거 제도를 통해 보장된다.
국민 다수의견이 의회에서 다수당을 형성하고 이 다수당이 권력을 인수가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권력이 여론의 직접적 반영의 불과하다면 정치권력은 여론의 인도를 받아 행사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의원은 자기가 대표하는 집단의 의견을 주장하겠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대의원들이 존재하므로 그의 의견이 승리할 것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더구나 권력의 임무는 국가를 현 상태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따라서 권력은 앞으로 여론이 어떻게 변할지를 예측해야만 하고, 때로는 여론과 어긋나는 방향의 정책을 펼치기도 해야 한다.
이 경우 여론이 국가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여론을 인도하는 것이 된다.
플라톤이 철학자들에게 국가 행정을 맡기로 했던 이유는 철학자들이 다른 시민들보다 '선 善'에 대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더 이상 용인 될 수 없지만 권력자는 일반 국민들이 가질 필요가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IV. 올바른 여론이란 무엇인가?
루소는 위정자와 여론이 서로 일치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사회계약론>에서 루소가 내세우는 모델은 일종의 직접 민주정치가 가능한 소규모의 정부 체제 일 뿐이다.
규모와 복잡성 면에서 이러한 단순한 체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대해진 현대 국가에서 '민의 民意'를 직접 반영할 수 있는 수단은 국가적 주요 사안에 대한 국민투표뿐이다. 하지만 이해 당사자(주로 주요 정당)가 투표의 승리를 위해 캠페인이 펼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현대 사회에서 여론이란 부정확하고 불충분하여 정치권력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현대 정치는 너무 복잡해서 그것이 작동하는 과정을 일반 국민이 명료히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권력 자체도 경제, 사회, 이념 등 각 방면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런 점에서 현대 국가는 테크노크라시 체제로 변할 위험이 있는데, 중요한 점은 권력이 행사되고 작동되는 조건과 현실이 이제 일반 국민의 이해 수준을 크게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제 권력은 여론을 무작정 따라갈 수도 없고, 심지어 여론이 권력의 토대라고 말하기조차 힘든 상황이 된 셈이다.
V. 결론
현대 국가는 루소의 이론에 등장하는 것과 같이 일반국민의 여론에 따라 정책이 결정되고 행사되는 단순한 사회가 아니다.
따라서 모든 면에서 이제 국가가 여론의 요구를 직접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현대 국가가 이러한 이상에 가까워지려면 일반 국민이 권력기구의 구체적 실행에 관한 다양한 정보에 쉽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할 것이며, 집단적 이익에 대한 여론의 항구적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 출처 :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1 – 종합편 / 최병권・이정옥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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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된지 20년이 된 책이지만 여전히 꽤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좋은 책입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도 제법 많이 깔려있으니 가까운 알라딘이나 예스24 중고서점 매장을 찾아보시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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