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발표한 '프랑스의 부역자 처벌: 2차 대전 후의 프랑스의 부역자 처벌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 전 후 국가재건과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가장 먼저 프랑스가 진행한 민족반역자들에 대한 단죄의 역사를 알아보겠습니다.

I. 서론 : 논문 소개
윤석열 정권의 한일 정상회담 후폭풍이 상당히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해방 후 80년 가까이 진리이자 정의라고 배워오고 믿어왔던 모든 것들을 송두리째 뒤집어엎는 국가원수의 말과 행동은 단순한 놀라움을 넘어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부분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나타나는 30%의 지지층이 보이는 반응들을 보면 절망마저 느끼게 됩니다.
여론조사꽃에서 이번에 발표한 사회현안 질의에 보이는 답변들에서는 지지하지 않는 정치세력에게 이득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국가와 민족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많은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정치, 군사, 문화, 경제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꾸준히 친일 논란이 일어나는 이유는 해방 후 친일 잔재를 완전히 털어내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2차 세계대전 후 나치 부역자에 대한 무자비한 처벌이 이루어진 유럽, 특히 프랑스가 행한 그것은 잔혹하다고 할 정도로 철저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세계사에서 참혹한 시기였으며 프랑스도 전쟁의 참혹함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전쟁 중에 일부 프랑스 시민들과 정부관료들은 두려움, 이기심 또는 이념적 동정심 때문에 나치 독일에 협력하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는 재건과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벅찬 과제에 직면했습니다. 이 치유 과정의 시작은 나치에 협력한 사람들을 재판에 회부하여 처벌하는 것이었습니다.
원래는 위의 주제로 집에 있는 책들과 인터넷 자료를 정리하여 글을 써볼까 하였으나 너무 잘 정리된 글을 찾아 첨부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아래 첨부한 글은 2020년 사망하신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프랑스의 부역자 처벌: 2차 대전 후의 프랑스의 부역자 처벌 연구'라는 논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정치인 박원순 이전에 변호사, 사회운동가 박원순은 무척이나 많은 책과 논문을 남겼습니다. 특히 1997년 역사비평사를 통해 내놓은 '국가보안법연구' 시리즈 3부작은 대한민국 전체를 분열시킨 국가보안법의 제정과 변천과정, 그리고 현실적용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연구로 국가보안법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입니다.
이 글의 출처는 '역사광복운동본부'라는 개인 사이트입니다. 역사왜곡과 관련된 많은 글들이 담겨있는 사이트이니 방문하여 볼 만할 것 같습니다.
사이트에는 박원순 변호사의 글이 모두 세 편 올라가 있습니다.
사이트에 올라온 박원순 변호의 '프랑스의 나치부역자 처벌의 역사'를 정리하여 PDF로 변환하여 첨부합니다.
아래는 서론 부분을 옮긴 것입니다.
논문의 앞부분을 확인하고 다운로드하시면 좋을 것 같아 첨부합니다.
II. 프랑스의 부역자 처벌 서론
'깨끗한 손'만이 훌륭한 국가를 만든다
– 2차 대전 후의 프랑스의 부역자 처벌 연구 –
변호사 박원순
1. 서론
적에 대한 부역(collaboration)은 전쟁의 패배와 적에 의한 영토점령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적군이 다른 나라를 침략해 들어올 때는 언제나 침략군과 피침국 국민 사이에 일정한 협력이 있게 마련이다. 1351년의 영국 에드워드 3세 때의 한 법령은 반역행위를 적에 대한 부역의 형태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에서의 부역행위는 바로 나치에 협력한 비시정권의 페탕 원수의 1940년 10월 24일 자 선언에 의해 규정되었다. 페탕은 나치 총통 아돌프 히틀러와의 회담을 마친 후 같은 날 프랑스 라디오를 통하여 나치독일과 프랑스사이의 협력관계의 원칙을 선언하였던 것이다. 부역이라는 말은 바로 이 역사적 선언과 특수한 사건의 배경하에 쓰이기 시작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부역이라는 말에 대한 상이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의 부역이란 점령자 나치와 피점령지의 파시스트 사이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협력을 의미하였다. 패전 프랑스에서 "1940년 당시 소수에 의해 자랑스러운 깃발, 다수에 의해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이 말이 나중에는 반역으로 낙인찍혔고 그 자랑스러운 깃발은 수의(壽衣)가 되고 말았다".
독일군에 대한 드골의 '자유프랑스'와 레지스탕스운동은 곧바로 비쉬정부와 이 정권을 뒷받침하고 있던 부역자들과의 전쟁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내전과 다를 바 없었다. 그 전쟁과 점령이 끝난 후 '내전'으로 말미암은 심각한 분열이 초래되었다. 먼저 프랑스 사회에는 처벌과 공직추방, 재판과 항변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바로 독일에 협력한 부역자들에 대한 전면적인 숙청의 바람이 일었던 것이다. 그 협력이 과연 프랑스를 독일의 직접적인 점령과 수탈로부터 방어한 차선책이었던가 아니면 프랑스의 불이익과 그 국민의 고통을 초래한 이적행위였던 가의 논쟁이 치열하게 일어났다. 이 논쟁은 상당한 시간이 지난 오늘에까지 식지 않은 채 열기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1970년대 후반에 여전히 열띤 논쟁의 주제였음이 명백한 비쉬정권의 역사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무식하게도 나는 내가 메스를 들어도 될 만큼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시체'는 아직도 따스하였다. 해부학자가 부검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빠른 시간이었다.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을 다루는데 적합한 의사가 필요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식지 않는 논쟁에도 불구하고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점령을 경험한 프랑스에서의 부역자 처리는 그 단호한 점에서 우리의 귀감이 되고 있다.
사실 프랑스의 독일 점령하에서 대표적 부역자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비쉬정부는 한국의 친일부역집단과는 달리 나름대로 존립과 정당화의 여지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자신의 어두운 역사와 부끄러운 과거를 과감하게 도려내는 역사적 과업을 수행함으로써 민족적 정통성을 곧추세웠다.
"프랑스 사람들이 나치독일의 점령이라는 민족적 수치와 굴욕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종전 반세기를 계기로 참된 민주주의를 위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흔히들 '나치협력자'로 불리는 민족반역자들을 엄정하게 처단하여 민주주의를 올바로 세웠다는 자부심이 깔려 있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서 프랑스는 4년여 동안의 나치점령시기, 역사로부터 떼어내고만 싶은 암울했던 점령기를 과거에 대한 준엄한 심판과 처단을 통하여 극복했으며, 그 당연한 결과로 가장 선진적인 민주국가를 건설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나치협력자에 대한 처단을 통해 프랑스가 보여준 과거청산의 본보기는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자유와 사회정의, 그리고 인권이 참되게 존중받는 민주국가 건설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비쉬정부에 대한 처벌이나 추방의 단호함 보다 우리를 더욱 감동시키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프랑스인, 프랑스 사회의 관심의 집요함과 지속성이다. 단 4년간의 피점령기간이 40년이 넘게 프랑스 현대사에 기나긴 너울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인용한 글에서 보듯이 이 문제는 언제나 프랑스의 '활화산'이 되어 때로는 그들을 괴롭히는 '망령'이기도 하고 때로는 민족의식과 사회이데올로기를 재점검하는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클라우스 바르비 외에도 프랑스 국민의 뜨거운 열기와 관심, 논쟁을 모은 폴 뚜비에르, 모리스 파퐁, 르네 부스케 등에 대한 재판이 최근까지 이어졌다. 또한 1964년 이후부터는 모든 학교에서 '레지스탕스와 추방'에 관한 가장 잘 된 글에 대하여 매년 상이 수여될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한 교육적 관심이 뒤따랐다. 또한 레지스탕스는 영화와 소설, 역사 논문의 가장 보편적인 주제였고 비쉬와 부역자는 거의 건드려지지 않은 금기가 되었다.
제대로 역사의 청산을 경험하지 못한 한국은 그 후유증을 호되게 맛보아야 했다. 일제의 미청산은 한국 현대사의 권위주의적 정치행태와 군사적 문화유산의 업보를 남겼다. 만약 프랑스에서와 같이 우리가 일제 지배하에서의 친일부역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단행하고 이들에 대한 공직의 추방, 정신적 자주성의 확립을 이루었다면 독립된 조국은 민주주의의 만발, 자유와 인권의 철저한 보장등 보다 건강한 발전을 기약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한탄과 자괴를 금할 수가 없게 된다. 더구나 그들의 부역자 청산의 과정을 보면서 우리의 역사와의 대조를 통하여 역사적 청산의 비뚤어진 과정과 원인을 되짚어볼 중요한 계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