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신없이 도망가는 모양을 보고 우리말로 '줄행랑친다'라고 합니다. 요즘에는 사어死語가 되어버린 듯 좀처럼 들을 수 없는 말이긴 하지만 예전에는 '36계 줄행랑'이라는 표현을 신문이나 소설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줄행랑'과 비슷한 뜻을 가진 속어 '빤스런'의 뜻과 어원, 그리고 '줄행랑'에 녹아있는 단어 '행랑'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I. 행랑 • 行廊
행랑은 한자로 '다닐 행行', '사랑채·딴채 랑廊'으로 씁니다.
대문간에 붙어 있는 방으로, 예전에 대문 안에 죽 벌여서 지어 주로 하인이 거처하던 방을 말합니다.
위의 사진에 삽화의 아래쪽에 대문 옆에 좌우로 늘어선 방들이 바로 행랑이 들어선 집채인 '행랑채'입니다.
원래 '사랑채·딴채 랑廊'이라는 한자는 사랑채, 행랑, 복도 등을 뜻하는 한자로 뜻을 나타내는 '집 엄广'자와 소리를 나타내는 '사내 랑郞'가 합쳐진 형성 문자입니다.
안채와 따로 떨어져서 바깥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접대하는 방인 '사랑舍廊', 손님방으로 사용하는 '수랑守廊'과 같이 한옥에서 안채를 제외하고 가족 이외의 사람들을 위한 방은 모두 '랑廊'을 붙여 쓰고 있습니다.
행랑에는 주로 대문 옆에 있어서 하인들이 거처하며 손님이 오실 때 문을 열기 쉽도록 위치해 있으며 안채와 떨어져 있어서 일과 이후의 시간에는 독립성을 어느 정도 보장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행랑은 바깥쪽에 있는 '외행랑'과 집의 안쪽에 있는 '내행랑'으로 구분되고, 한 칸짜리 행랑을 '단행랑'이라 하고, 대문의 좌우로 죽 벌여 있는 행랑을 '줄행랑'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행랑채에서 '행랑살이'를 하고 있는 나이 든 하인을 성별에 따라 '행랑아범'이나 '행랑어멈'이라 하고, 행랑에서 살던 하인을 낮잡아서 '행랑것' 또는 '행랑붙이'라고 불렀습니다.
II. 줄행랑 • 줄行廊
우리에게 익숙한 줄행랑은 나중에 설명할 단어, '빤스런'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 줄행랑의 어원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정리된 학설은 없는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소개합니다.
1. 줄행랑의 어원 첫 번째
그 줄행랑의 사전적 의미는 아래와 같습니다.
- 대문의 좌우로 죽 벌여 있는 종의 방
- '도망 逃亡'을 속되게 이르는 말
줄행랑의 사전적 의미 2가지가 서로 전혀 다른 뜻을 가지고 있어 둘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기 쉽습니다. 이에 대해 국립국어원은 '1의 의미가 확장되면서 비유적인 의미를 가진 것으로 판단됩니다'라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이와 유사한 의견으로 충북대 국어국문학과 조항범 교수는 2019년 칼럼에서 아래와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 행랑을 죽 이어서 쌓는 것을 보통 '줄행랑을 치다'라고 표현한다.
- 여기서 '치다'는 '담을 치다'의 그것과 같다.
- '줄행랑을 치다'는 그 본래의 의미를 넘어 '피하여 달아나다'라는 관용적 의미를 띠게 된다.
- 행랑을 길게 치는 것이 마치 꽁무니를 뺀 채 줄달음질을 치는 것과 같아 보여 '줄행랑을 치다'에 이러한 관용적 의미가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 '줄행랑'이 갖는 '도망'이라는 의미는 '줄행랑을 치다'가 갖는 '피하여 달아나다'라는 관용적 의미를 통해 나온 것이다.
- 곧 관용구의 한 요소인 '줄행랑'이 관용구 전체의 의미에 영향을 받아 '도망'이라는 또 다른 의미로 변한 것이다.
2. 줄행랑의 어원 두 번째
줄행랑에 대한 또 다른 의견으로는 2017년 YTN '재미있는 낱말풀이'라는 방송에서 소개된 내용이 있습니다.
방송에서 개그맨 출신으로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정재환 교수와 YTN 아나운서 조윤경 씨가 출연하여 정리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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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행랑 ‘도망’을 속되게 표현한 말인데, 원래 옛날 양반집 대문 좌우에 길게 늘어선 하인들의 방을 가리키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권력이 바뀌거나 가세가 기울어 양반들이 줄행랑이 달린 집을 버리고 급하게 도망가는 모습에 빗대 표현한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
III. 빤스런

'빤스런'은 앞서 설명한 '줄행랑'과 같은 뜻을 가진 말로, 요즘 여기저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속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뒤도 안 돌아보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치는 모습을 조롱하는 신조어로, 제대로 옷도 갖춰 입지 않고 팬티 바람으로 허둥지둥 도망친다는 뜻입니다.
널리 알려진 빤스런의 어원은
- 2011년 발생한 제2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당시 총소리에 겁먹고 팬티 바람으로 민가로 도망간 해병대를 조롱하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빤스런의 유래가 위와 같다 보니 줄행랑과 마찬가지로 '정신없이 도망친다'는 뜻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 뉘앙스는 '본인의 책임과 임무를 다하지 않고 자기 혼자 살겠다고 주위를 내팽개치고 달아나는 권력자나 책임자를 비난하는 단어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상 대표적인 빤스런 주자로는 임진왜란 보름 만에 한성을 버리고 도망간 선조와 한국전쟁 발발 열흘 만에 대구와 부산으로 잽싸게 달아난 이승만이 있겠습니다.
심지어 이승만은 자기는 대전, 익산, 목포, 대구에서 부산까지 쉬지 않고 도망 다니면서 라디오 방송으로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사기까지 치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들 앞에서 나불대는 정치인들이 빤스런을 할만한 인간인지 아닌지를 심각하게 고민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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