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묘살이(侍墓살이)의 역사, 이해, 절차, 생활 등

'시묘살이'는 지극한 효심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행위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방송이나 책에 자주 등장하지만 대략의 정의와 함께 어렴풋이 설명할 정도의 지식밖에 없는지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찾아보고 정리합니다.

시묘살이와 관련된 내용들을 짧게 짧게 정리해보았습니다.

 

시묘살이

 

I. 시묘(侍墓) 살이와 삼년상(三年喪)

시묘살이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자식이 묘 옆에 움막을 짓고 거주하면서 탈상할 때까지 묘소를 돌보는 일입니다.

모실 시侍에 무덤 묘墓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단어이며, 말 그대로 무덤을 모시며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탈상이란 삼년상이 모두 끝나 상복을 벗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삼년상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36개월을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 삼년상의 기간은 만 2년 정도입니다.

정확히는 25개월 정도인데, 조선의 국가 법전인 '경국대전 經國大典'에 명시된 '상례 喪禮'에는 사람이 사망하면 처음 행하는 초종(初終)부터 27개월째에 행하는 담제(禫祭)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바로 담제의 앞인 25개월째에 이행하는 대상까지가 삼년상의 기간이 되는 것입니다.

 

※ 초종 初終 : 사망 전후 특정 단계까지 진행되는 상례 의식. 사망하기 전과 사망 당일에 이루어지는 일련의 절차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 담제 禫祭 : 대상(사망 후 두 번째 기일에 지내는 제사) 후 중월 中月에 지내는 상례의 마지막 제사

 

삼 년간 초상을 치르는 것은 공자 이전부터 행하여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공자는 삼년상을 행하는 이유에 대해 논어에서 아래와 같이 이야기하였습니다.

 

자식이 태어난 지 3년이 된 뒤에라야 비로소 부모의 품을 떠나는 것이다.
대체로 삼년상을 치르는 것은 천하의 공통된 법이다'

子生三年, 然後免於父母之懷.

夫三年之喪, 天下之通喪也.

<논어論語 양화편陽貨篇>

시묘살이_출처 충북일보
시묘살이 (출처 : 충북일보)

정리하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자식은 묘 옆에 움막을 짓고, 돌아가신 날로부터 약 2년인 25개월 정도를 움막에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저하게 고기나 생선이 없는 채식 위주의 소박한 식사인 소식素食을 하였으며, 심지어 시묘살이 중에 죽음에 이를 정도로 매우 고통스럽게 생활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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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묘살이는 부모가 돌아가셨지만 살아계실 때와 마찬가지로 묘 옆에서 생전에 못다 한 효도를 지속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주희가 쓴 것으로 알려진 관혼상제의 예법을 정리한 '가례'나 '국조오례의' 등의 예서에는 시묘살이에 관한 규정이 따로 정리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정식 의례행위라기보다는 사대부의 삶 속에 자리 잡은 전통 풍속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II. 시묘(侍墓) 살이의 역사

 

공자孔子가 사망하자, 그의 제자들이 3년간 심상心喪을 지내고 돌아갔는데, 제자 중에 자공子貢은 6년 동안이나 공자의 묘 곁에서 여막을 짓고 추모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의종대에 손응시, 명종대에 장광부, 고려 말기에 하광신, 김광재, 하윤원 등이 3년의 여묘 생활을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삼강행실도'에 의하면 최누백은 아버지를 잡아먹은 호랑이를 잡아서 복수하고 3년 동안 여묘에서 살았다고 하며, 경주에 살던 손시양은 부모를 위해 각각 3년간 여막을 짓고 살아서 나라에서 그에게 정문旌門(효자문)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리학의 대가인 정몽주 역시 부모의 상에 각각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습니다.

이후 조선시대 들어 시묘살이는 사대부에게 널리 유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 심상 心喪 : 상복을 입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애통해하며 근신하는 것

※ 여막 廬幕 : 시묘살이를 하는 상주가 무덤 옆에 지어놓고 거처하는 초가, 움막

 

즉, 시묘살이는 어디에도 규정되어 있지 않은 의례이나,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을 위해 한 일이 중국에서 계승되었고,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와 사대부의 풍속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따라서 시묘살이는 성리학과 유학의 예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유교적 관습이라는 것입니다.

3년 시묘살이 하는 율곡 - 파주 이이 유적지 율곡기념관 소재
3년 시묘살이 하는 율곡 – 파주 이이 유적지 율곡기념관 소재 (출처 : 대순회보 171호)

 

III. 시묘살이의 생활

시묘살이의 기간 동안에는 부모님의 죽음이 자신의 불효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모시듯 산소를 돌보고 공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에 생활에 있어서도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 3년 동안 베로 만든 상복을 입고, 수염과 머리카락도 깎지 않습니다.
  • 아침저녁으로 부모님을 기리며 제사를 지내고 곡을 합니다.
  • 밥은 자기가 직접 해 먹었고, 식량은 식구가 조달해주었습니다.
  • 낮시간에는 주로 글을 읽고 무덤을 돌보았으며, 가끔 집에 가서 옷가지나 식량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 관직생활을 할 수 없으며, 먼길을 떠나지 못합니다.
  • 손님을 맞이하거나, 농사일을 돌보는 것은 가능하였습니다.
  • 고기나 생선 반찬이 없는 채식 위주의 소박한 식사를 해야 합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제된 생활로 매우 고통스러운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 매우 제한적이고 예외적으로 용인되는 사례로 아래와 같은 것이 있습니다.
    • 건강이 좋지 않을 때 몸을 보전하기 위하여 인삼이나 약을 복용하는 것.
    • 체력을 보존하기 위해서나 병이 있을 때는 고기를 먹는 것.
    • 어른이 억지로 권할 때나 병이 있을 때는 취하지 않을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
  • 임금들도 시묘살이를 하였습니다. 단, 국정을 돌보아야 하므로 '시릉내관'을 임명하여 내관으로 하여금 시묘살이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기간은 일반 사대부와 마찬가지로 3년간이었으며, 시묘살이를 마친 내관에게는 상을 내렸습니다.
  • 시묘살이는 기본적으로 남자들이 행하였으나 집안에 이를 할만한 남자가 없는 경우 여자가 대신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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